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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물꼬기 Sep 20. 2023

나의 로망 수초어항 나의 사랑 와이프

매일 밤 나는 꿈을 키웠다. 물고기를 키우다 보니 점점 근사하고 큰 어항을 갖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물욕이 없는 나인데 유독 어항 확장의 로망은 불타올랐다. 와이프의 내 집 마련의 꿈처럼…


처음에는 작은 어항, 약 30cm 크기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45, 60, 90cm까지 점점 크기가 커졌다. 다양한 물고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어항의 크기와 개수가 늘어나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돈도 이렇게 증가되면 좋으련만). 


결국, 2015년 거실 한쪽 벽에 거대한 2단 축양장을 설치했다. 크기는 가로 90cm 세로 50cm 높이 70cm로 아파트에 이 정도면 큰 규모였다. 이외에도, 45cm 어항 2개를 거실장 위에 설치했다.


이렇게 어항은 복리 이자처럼 빠르게 늘어났다. 어항이 많아지자 점점 집안에 습기가 많아지고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보! 어항 습기 때문에 빨래가 마르지 않아!”

“어항 한 개 유지하기도 힘든데 도대체 몇 개야!”

“취미생활도 정도껏 해야지, 나랑 사는 거야? 물고기랑 사는 거야?”

“우리 내년에 새집으로 이사할 때는 절대 어항은 안돼!!!”


나는 왜 이렇게 어항에 집착했을까? 왜 물고기 키우기를 멈추지 않았을까?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때 나는 현실의 도피처가 필요했었다.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물고기들이 좋았다. 


멍하니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되었고 내가 만든 작은 어항 세계가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점점 더 근사하고 멋진 어항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와이프는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점점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다. 2016년, 드디어 맞벌이 7년 만에 전세에서 자가로 이사하는 날, 가장 기쁜 날, 나는 가장 슬펐다. 모든 물고기들에게 이별 통보를 해야만 했다. 


나의 마지막 안식처, 최애 취미생활은 이제 끝이란 말인가? 매일 밤 고민했다. 와이프를 설득하기 위해 설득의 기술, 인간관계론 책도 정독했다. 


나는 ‘모 아니면 도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이사하기 2개월 전 불금 날 치맥을 하며 말을 꺼냈다.


“여보 나 할 말이 있는데…”

“뭐? 뭔데? 역시 불금에는 치맥이지?”

“우리 곧 이사하는데 한 가지 소원이 있어”

“소원? 뭔데? 낚시 가고 싶다고?”

“아니 지금 있는 어항…이사 갈 때 다 정리할게, 새집이고 곰팡이도 많이 나고 그러니까…” 

“대신 딱 어항 하나면 놓으면 안 될까?”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와이프는 그 좋아하는 치킨을 내려놨다.


“내가 곰팡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할게…"

“힘들게 돈 벌어서 7년 만에 새 아파트로 가는데, 나도 나를 위로하고 싶다고, 정말 내 소원이야”

“여보… 새 아파트인데.. 이제 그만하자… 어항 하나도 결국 곰팡이 생길 거고 회사 바쁘다고 관리도 안 할 거잖아. 나 정말 힘들어…”


불금이 아니라 차디찬 얼음 같은 금요날이었다. 그날 난 답을 듣지 못했다. 그 후로 냉전은 오래갔다. 매일 답답한 마음, 집에서 불편하고, 회사 야근도 많아졌다.  “이놈의 물고기가 뭐라고 직장도 물고기도 모든 걸 다 때려치울까?"라는 생각도 했다. 


어느 날 퇴근하며 돌아오는데, 이런 위기와 저항은 왜 생기는 걸까? 혹시 누군가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인생을 포기시키려고, 인생은 원래 그런 거라고,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래?”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성취의 보람을 느끼고 싶었을까? 이날 저녁부터 ‘와이프 설득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은밀하고 치밀하게, 난 ISFJ 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집안 청소와 정리를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들 아침도 함께 챙겼다. 최대한 야근도 줄이고 저녁을 함께하며 와이프의 이야기를 듣고 호응해 줬다. 


일주일을 이렇게 보내고 나니 와이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 알았다. 와이프는 물고기가 싫은 게 아니었다. 


가족과 와이프에게 좀 더 관심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리 어렵지도 않은데 왜 나는 나만 생각했을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감정이 올라왔다. 어느 날 바쁜 아침 출근 전 와이프는 이렇게 말했다.


“OK ! 대신 딱 어항 한 개다. 그리고 곰팡이 안 나게 잘 관리하기로~”

“예스! 예스! 예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이렇게 나의 로망 ~ 수초 어항의 꿈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와이프의 OK 사인이 떨어지던 그날, 마스카라가 매력적인 브리샤르디는 매혹적인 눈빛을 보냈다. 와이프한테 잘해 ~ (브리샤르디는 와이프가 제일 좋아하는 물고기다.)


브리샤르디는 와이프가 제일 좋아하는 물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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