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물린여자 06
그래서 루푸스가 뭔데?
정식명칭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라고 불리는 이 병은 자가면역질환의 종류 중 하나로 흔히 천의 얼굴을 지닌 질병이라고들 한다. 환자마다 증상이 매우 다양하고, 앞서 보았듯 산발적인 증상들 때문에 초기에 잡아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루푸스(lufus)는 늑대라는 뜻으로 루푸스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볼에서 코로 이어지는 나비모양의 홍반이 늑대에게 물린 자국 같다는 의미로 지어진 병이라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병 이름을 참으로 낭만적으로 짓지 않았나? 나비모양의 홍반과 늑대에게 물린 자국이라니. (당사자성 농담이니 넘어가주길 바란다.)
아직 병에 걸리는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환자의 90프로 이상이 가임기 여성이라 여성호르몬 또한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들 한다. 그 외에 유전적 요인이나 자외선, 약물복용 등 다양한 원인들이 루푸스를 발병시키는 인자가 아닐까 유추하고는 있으나 뚜렷하게 나온 사실은 아직까지 없다.
처음 루푸스를 알게 된 계기는 한 아마추어 작가의 글 속이었다. 얇은 책자 속에서 주인공은 루푸스라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글 속에서는 병의 이름도, 증상도 매우 낭만적으로 묘사되었다. 햇빛을 보지 못하고 근육이 점점 빠지며 홍조가 붉게 일어난 주인공은 주위사람들의 사랑과 걱정을 받다가 종내 죽음으로 결말이 났다.
그 작가의 글을 매우 좋아해 신간이 나오면 모두 사 읽던 나에게 루푸스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소설 속의 병에 불과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루푸스라는 질병에 대한 인식이란 이럴까? 절대 고치지 못하고 점점 말라죽어가는 마지막 잎새 속 가녀린 환자. 아니, 애초에 루푸스라는 병 자체를 관심 갖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라.
사람이란 관심을 가져야 내게로 와 꽃이 된다고 하던가. 루푸스에 걸리고 나서야 그 질병에 대해 관심이 생긴 나는 인터넷과 책을 통해 자가면역질환이 무엇인지, 루푸스가 어떤 질병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무지의 세계에 들어서 당사자가 되어있는 기분은 매우 낯선 곳에 처음으로 떨어진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제는 많이들 알고 있지만 자가면역질환은 내 몸의 세포가 나를 공격하는 질환이다. 인간의 몸은 밖에서 들어오는 세균과 바이러스 등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항체를 개발하는데, 세균이 들어오면 면역반응이라는 것을 통해 대항한다. 자가면역질환은 세균을 공격해야 하는 면역세포들이 신체 구성요소들을 엉뚱하게 공격하기 시작하는 질환이다.
루푸스는 그중에서도 전신 이곳저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병이다. 스트레스나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면역체계가 깨지면 뇌, 심장, 신장 등 주요 장기에서 염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관절부위를 공격하기도 하며, 정신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피부 홍반이 올라오기도 한다.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다 보니 주치의는 오늘 멀쩡하게 나갔던 환자가 2주 뒤 응급실로 쓰러져서 오는 일이 왕왕 있는 병이라고 내게 설명하고는 했다.
그렇다면 루푸스는 건강했던 나에게 2년 전 갑자기 찾아온 재앙이었을까?
진단을 받은 날 병원에서 나누어 준 짧은 책자 속 루푸스의 다양한 증상들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루푸스에 걸려 있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루푸스에 취약한 사람이었으리라. 루푸스 진단을 받으면서 느꼈던 똘똘 뭉쳐진 감정의 덩어리 중에는 분명 '안도감'의 실타래도 포함되어 있었다.
병에 걸려서 울기까지 했으면서 웬 안도감이란 말인가? 이 안도감은 나을 수 있다는 희망 따위가 아니었다. 다 괜찮을 것이라는 낙관도 아니었다. 단지 '나'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된 데에 대한 끄덕임이었다.
나는 공포가 무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빛 한줄기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눈앞에서 어떤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한걸음 내딛기도 힘들다. 하지만 막상 초를 켜 앞을 살펴보면 망망대해 같던 어둑서니가 방 한 칸짜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어둠이라면 능히 버틸 수 있다. 나는 아픈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싫었다.
이유 모를 증상을 앓으면서 내가 그저 남들보다 나약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나를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지게 했다.
최근 ADHD가 가시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단순히 '비정상적인 사람', '뒤떨어진 사람'으로 분류되고 낙오되던 이들이 자신의 행동이 증상임을 알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푸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나는 늘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 예민한 사람, 부족한 사람으로 정체화했다. 배는 노력하고 살았지만 노력에 비해 보이는 성과는 늘 적었다. 자존감이 뚝뚝 깎였다.
내 노력을 아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노력을 모르는 사람에게 나는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으로 비쳤다. 어떤 선생님은 나를 성실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학생이라고 평했고, 어떤 선생님은 나를 모자라고 게을러 매일 조는 학생이라고 평했다.
나는 극단적인 평가 속에서 내가 혹시 주위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살았다. 조금이라도 환경이 바뀌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볼이 빨간 소녀는 안면홍조와 햇빛 알러지를 가지고 있었다. 환경이 변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김없이 크게 아팠고, 두통, 가슴통증 등의 증상으로 응급실에 가면 혈액에서 염증수치가 높지만 그 외의 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나의 고통이 내 뇌가 가짜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정신과 상담을 받았지만 타고나기를 예민하다는 의견만 나왔다. 뇌수막염을 3번 앓고 척추천자 검사를 하느라 등을 둥글게 말 때마다 내 몸은 대체 왜 이모양이지? 나는 대체 왜 이러지? 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낫지 않을 질병을 굳이 일찍 알아서 무엇하냐며 루푸스임에도 약을 먹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그녀는 루푸스 의증을 진단받고도 약을 먹지 않고 살았다. 자신은 충분히 일상생활을 잘 살고 있고, 약을 먹을 때 오히려 부작용으로 몸이 안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의 병은 때때로 활성기가 찾아올 테고, 계속 아플 테니까 몸 사리지 않고 평범한 사람처럼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물었다.
'모르는 게 약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소녀는 자신의 극심한 피로와 주의력 결핍, 관절통이 병임을 알았다면 주위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비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스스로를 과하게 불태우지 않았을 것이다.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맞춰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더 빨리 깨우칠 수 있었을 것이고, 인생을 살아가며 얻은 대부분의 콤플렉스들을 무던하게 넘기고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나에게 먼저 화해의 악수를 내밀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리라.
나는 하루아침에 루푸스에 걸린 것이 아니다. 루푸스 인자를 가지고 태어났고, 취약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환경적으로 공격받았을 것이며, 2022년에 활성기를 크게 맞이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늑대와 함께 사는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