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물린여자 05
직장에는 환자들을 위한 소운동장이 있다. 소운동장 한 켠에는 등나무 벤치가 있는데, 6월이 되면 등나무꽃이 만발해 연보라색 꽃들이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한다. 벤치 기둥을 타고 감은 등나무는 천장에 그늘막을 치고, 그 사이로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진한 향의 꽃들이 소리 없는 종처럼 바람에 흩날린다.
초여름, 산속의 맑은 공기와 달큼한 꽃향기, 쨍쨍한 햇살과 푸르른 하늘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눈을 감고 기분 좋은 날씨를 만끽하게 된다.
그 무렵이었다. 왼쪽 발등에 봉와직염이 생겼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같은 부대원이나 본인이 한 번씩은 걸리게 된다는 그 질병은 세균이 피부의 진피나 피하조직을 침범에 생기는 염증반응이라고 했다.
또 그놈의 염증말이다.
손이나 발 등 말초신경에 자주 생기는 염증으로 여름철에 자주 생긴다고 하던데 나는 왼쪽 발등이 신발도 신지 못할 정도로 붉게 부어올랐다. 아파서 누르기만 해도 악 소리가 나게 빨갛게 부어올라서는 그 부위가 구두닦이 소년이 광을 낸 것처럼 반질반질해졌다.
의사는 염증이 퍼지면 안 된다며 압박붕대로 내 부은 발등과 발목을 꼼꼼히 감쌌다. 나의 경우 특이했던 점은 세균이 들어갈 만한 상처가 발의 어느 부분에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벌레 물린 자국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발과 발목은 깔끔하기만 했다. 의사 선생님은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별거 아닐 것이라며 항생제 주사와 약 처방을 내렸다.
항생제는 몇 달간 내 몸에 끊이지 않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봉와직염은 잘못하면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며 항생제도 센 것으로 바꾸어 먹었다. 최대한 걷지 말라고 하였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내가 당시 맡고 있던 병동은 3층이었고, 하루에도 수번씩 사무실이 있던 1층과 3층을 오르내려야 했다.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고 돌아오면 아니나 다를까 발가락까지 퉁퉁 불어있는 새빨간 발이 나를 반기었다.
약을 꼬박꼬박 먹는데도 밤이 되면 열이 올랐다. 과제를 하는 속도는 날이 갈수록 느려졌고 그 뒤에서 기다리는 과제들은 늘어만 갔다. 발등 위에 얼음팩을 올려 고정시키고, 겨드랑이에도 얼음팩을 번갈아가며 대어 열을 식혔다. 마음 편히 잠을 이루기에는 양심에 찔려 반쯤 책상에 엎드려 과제를 했다.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맹장수술로 수련 초에 일주일을 빠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업무에 지장을 갖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픈 이유가 다름 아닌 신체화 증상이라며 정신적인 문제로 뭉뚱그려 치부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자주 아프다면 그냥 포기하라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픈 것을 숨겼다. 밤마다 끙끙 앓는 것을 가족들도 모르는 채 초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밤에 창을 열어놓고 과제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모두가 잠이 들고 주변이 고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열 때문에 마른 입안을 물로 헹구고 방 안으로 돌아오면, 빽빽한 주택가 건물 사이로 매일매일 다른 모양의 달이 보였다. 나는 그 달을 보며 견뎠다.
작은 창문 너머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자 되뇌고는 했다. 금방 나아지겠지, 지나가겠지. 절뚝거리면서도 꾸준히, 열심히 수련을 다녔다. 언제나처럼.
그러나 봉와직염은 나를 놀리듯 양 발등에 번갈아가며 생겼다. 뼈까지 침투해주지 않은 것은 무척이나 다행이겠으나, 왼발이 나을 만하면 오른발에 염증이 생기고 또 오른발이 나을만하면 왼발에 염증이 올라왔다. (루푸스가 전신에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라 이런 것임을 아무도 몰랐다.) 내 발에서 붕대는 떨어질 기미가 안 보였는데, 번갈아가며 절뚝거리고 다니자니 나중에는 스스로도 웃겼다.
왼발 감아, 다시 오른발 감아, 감을락 말락 할 때 다시 왼발 감아!
특히 오른발에 붕대를 감고 있을 때가 정말 곤욕이었다. 운전을 하기가 너무 아파 울며 출퇴근을 했다. 어떻게든 집에는 가야 하기에 붕대를 감은 발로 페달을 밟는데, 힘을 줄 때마다 찌릿하게 올라오는 통증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그즈음에는 손가락 관절 사이사이에도 염증이 올라왔다. 관절염은 예전부터 자주 있었지만 손가락 관절염은 생소했다. 처음에는 손목에만 파스를 붙이던 나는 점차 손가락 관절도 파스로 감싸다가 종내 손가락을 잘 굽히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손목은 물론이거니와, 팔꿈치까지도 욱신거리며 아픈데 그런 나에게 동네 정형외과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키보드 많이 쓰시죠? 쉬면 다 나아요."
과제와 업무로 인해 키보드를 끊임없이 쓰고 있던 나는 이미 뜨거운 물에서 다 익은 개구리가 된 상태였다.
온몸에 파스와 붕대를 감은 채로도 의사 선생님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새벽 물리치료사에게 배운 테이핑 방법대로 손가락에 테이핑을 하고, 발에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출근을 했다.
아, 이건 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구나. 몇 개월만 더 참으면 자연스레 키보드를 쓰는 시간도 줄어들고 아픈 것도 나아지겠구나. 그렇게만 여겼다.
세 번째 재발 때, 왼쪽 발등에 세 번째로 다시 옮겨 붙은 봉와직염을 익숙하게 처치해 준 동네 가정의학과 선생님은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채었다. 그는 내 발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역시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는 게 의아하다고 했다.
"큰 병원에 가서 여쭤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무 이상이 없는 몸에서 항생제를 계속 먹는데 새로운 염증이 생기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그렇게 말해준 의사 선생님이지마는, 정작 내가 어느 과로 가서 진료를 의뢰해야 하냐는 질문에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온 대답은 “혈관 내과… 일까요?”라는 되물음이었다.
그걸 나한테 왜 묻나. 나는 환자고 전문가는 선생님이신데. 그러나 고통이 지긋지긋했기에 그의 말을 한 귀로 넘기는 바보 같은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믿는 구석이 있었다. 마침 2주 뒤에 큰 병원의 신경외과에 외진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2년 전 전조성 편두통이 발병해 이후로 꾸준히 신경과 진료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큰 병원의 주치의를 만나는 김에 내 요즘 몸상태와 다른 병원 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함께 말하여 이 의문스러운 증상에 해결책이 나오기를 바랐다. 2주 뒤, 열심히 몸 상태에 대해 피력하면서 난 말했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뭔가 넘어가기에는 제 몸이 이상해요.”
나는 너무나 지쳐있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다고 다른 사람들은 말하는데 나는 왜 이리도 아픈 걸까. 어디가 문제인 걸까. 나에게서 원인을 찾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마 마음 한구석에서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건 신체증상이 맞다고. 너의 몸 어딘가가 무너진 것이라고. 다행히 신경과 선생님은 내 증상들을 들어보고 고민 끝에 협진을 내려주었다.
"젊은 여성한테 그런 큰 일은 없을 텐데 혹시 모르니까요. 검사나 한번 받아봅시다."
“류마티스 내과요?”
류마티스 내과에서 내가 받게 될 검사가 무엇인지, 신경외과 선생님이 어떤 질병을 의심하고 있던지 들어보지도 못한 채 나는 종종걸음으로 그 과로 향했다. 기뻤다. 나을 수 있겠다는 희망보다는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들어서였다. 내가 왜 아픈지 알 수 있다는 희망.
깜깜한 터널 속을 몇 개월 간 헤매다가 드디어 왜 아픈지에 대한 원인을 들을 수 있다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예전과는 달리 뭔가 진전이 되는 것 같지 않나. 만약 여기서도 문제가 없다고 하면 이제는 정말 내 예민함 탓이다. 그렇게 믿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진료실의 문을 열었다.
루푸스 환자들은 진단을 받기 전까지 많은 시간 스스로를 의심하고 살아가야 한다. 심지어 류마티스 내과에서조차 처음 방문 당시 자기가 담당할 환자들은 이렇게 멀쩡하게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류마티스과 초진 당시 나는 관절이 아프면 정형외과를 가면 된다, 키보드를 그만 만지고 쉬면 된다는 다른 전문의들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협진이 들어와서 검사는 할 건데……. 아우, 아니에요.”
내가 무슨 병으로 의심되는지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아닐 거라고 단정 짓는 주치의를 보며, 괜히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봉와직염이 가라앉은 타이밍이라 사진을 들고 갔더니 지나간 건 보여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아팠는데, 지금도 아픈데. 입이 뻐끔뻐끔 열렸다가 닫혔다.
물 위에 나온 물고기처럼 할 수 있는 언어가 없이 무언가 잘못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기가 잔뜩 죽은 채 피를 뽑고 나오며 괜히 긍정적인 자기 계발서 속 주인공처럼 ‘그래,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해보자!’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폭풍 같은 반년. 많은 전문가들이 젊은 여자는 그럴 리 없다고, 스트레스성이다. 날씨가 더워서 그렇다. 일시적인 것이다. 영양불균형이다.라고 말한 것과는 달리 나는 '루푸스'라는 질병에 걸려 있었다.
그들이 내려준 처방대로 햇빛 아래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나에게는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다.
물론 안다. 동네 의원에서 희귀병 환자가 찾아오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하지만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루푸스에 대해 경계할 수 있는 예민함을 갖고 있었다면 나는 좀 더 나를 덜 자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전문가들의 말을 잘 듣는다. 상대가 권위적일 때 더욱 잘 듣게 되고는 한다. 그러나 권위적이라고 하여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명확한 증거와 함께 답을 내어주지 않을 때는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내 몸에서 보내는 신호에 더 귀 기울여줘야 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대부분 쉽게 그런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들이 나보다 더 잘 아니까. 더 많이 배웠으니까.
진단을 받기까지 참 되었다. 이제 막 스타트 라인에 섰는데 나는 기진맥진, 혼곤한 정신으로 휘청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뒤에는 쌩쌩한 늑대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