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물린여자 07
그렇다고 해서 병에 걸린 것이 좋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웃음)
입원도 하지 않겠다고 버텼던 나쁜 환자인 나는 입원 대신 약을 한 움큼 받아왔다. 약기운으로라도 이 위기를(?) 잘 넘겨보라는 의사의 의도였다. 첫날 저녁, 손바닥 가득 들어차는 알약들을 입 안으로 넘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이 약을 먹기 전에도 나는 나름 잘 살아왔는데 (단언컨대 그 기억은 그냥 미화된 거다.) 이 많은 약들을 꼭 먹어야 할까?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동안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약을 안 먹고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현대 의학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정수기 앞에서 온갖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엉켰다.
처음 루푸스 확진판정을 받았을 당시, 나는 정신건강전문요원을 준비하던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만나는 대상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오랜 기간, 혹은 평생 동안 약을 먹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의 면담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과 걱정을 이미 내게 쏟아낸 바 있었다.
"선생님, 제가 약을 금방 끊을 수 있을까요?"
"약을 먹고 싶지 않아요. 부작용 때문에 힘들어요."
"한번 약을 먹으면 계속 먹어야 되나요? 언제쯤 끊을 수 있나요?"
환자들이 토로하던 걱정들이 느리게 머릿속을 헤엄쳤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삶이 있었다. 그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어 치료를 선택했지만, 약이 충분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 그런 불만과 걱정을 토로했다.
면담 당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답을 했었나. 진심으로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었는가 내가 너무 오만하게 상대방의 생각을 재단하고 판단 내리지는 않았었나.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으나 그것보다 작용이 더 크므로 약을 먹는 게 맞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였다. 지금도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때는 그 말이 진리였고 그 문장을 틀렸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상상하지도 못했다. 나는 힘들다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그 진리 안으로 설득하려 들기만 했다.
“충분히 공감하고 위로했나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슈퍼바이저 선생님은 내가 환자들에게 충분히 공감해주고 있는지 물었다. 그때는 자신 있게 잘하고 있다고 대답했으나, 현재 같은 질문을 듣는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충분히 공감했는가.
공감과 위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라포를 쌓는 첫 단계이다. 나는 대상자들의 마음을 쉽사리 공감한다고 떠들며 내 마음을 그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기만 하지 않았을까. 약봉지를 든 채 하고 있는 생각이 그때 환자들이 하던 생각과 다를 게 무엇일까.
사람이 입장 따라 발을 뻗는다더라니 막상 약을 앞에다 두고 하는 생각이란 비겁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약을 드세요. "라고 말하는 나의 잔상을 앞에 두고 정수기의 물을 따랐다. 손바닥 가득인 약은 한 번에 삼키기 어려웠다.
약을 먹으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홍조가 사라진 것이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먹어서일까. 어떤 좋은 파운데이션과 컨실러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던 볼의 붉은 기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신기해서 동생과 함께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뽀얗게 변한 피부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를 제외하면 이런 피부는 처음 보았다. 원래 내 피부색이 하얀 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머리카락이 덜 빠지기 시작했다.
한번 샤워를 할 때마다 수채구멍을 두세 번씩 비워야 할 정도로 빠지던 머리카락이 덜 빠지고 색도 더 이상 연해 지지 않았다. 늘 바람같이 흩날리던 머리카락이 제 무게를 되찾아 아래로 늘어졌다. 관절통도 예전보다는 나아져 문고리도 못 열정도로 힘없던 손가락에 제법 힘이 들어가게 되었다. 구내염이나 질염 같은 자잘한 염증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피로는 여전했고, 관절통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 테이핑을 풀 수가 없었다.
욱신욱신 쑤시는 손가락은 아침이면 퉁퉁 부어 칫솔질을 하기 힘들었다. 과제를 하고 요법과 면담을 하는 내 일상 하나하나가 여전히 무거운 추를 단 듯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 후,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이 찾아왔다.
얼굴은 볼과 턱이 둥글게 부었고 식욕이 갑자기 늘면서 늘 허기지고 동시에 속이 쓰렸다.
그 당시의 나는 약을 먹으면 마법처럼 병이 해결되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의사 말만 잘 들으면 돼, 약만 잘 먹으면 돼.라고 주문처럼 되뇌었다. 약을 안 먹는 것 보다야 훨씬 나은 선택지이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약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나 다름없었는데 인지하지 못했다.
이렇게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약을 먹는데 왜 내 증상들은 호전을 보이지 않는 건지. 어째서 아직도 하루하루가 이렇게 힘든 건지 답답하기만 했다.
약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약이 아니라 신물질 아닐까? 지금에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왜 약을 먹고 있는데! 왜 아직도 아프냐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장 속 나는 늘 화가 나 있었다. 세상의 모든 근심을 다 가져온 나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회색빛으로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나는 항상 불이 붙은 개처럼 살아온 사람이었다. 루푸스라는 질병을 알기 전까지 남들과 같은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너는 왜 그래?’, ‘왜 너만 유난이야?’라는 말을 들어가며 안간힘을 냈다. 항상 달리기밖에 하지 못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억지로 고삐를 씌우자 자신의 불안을 발산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속에는 많은 울분이 쌓였다. 이대로 서 있으면 안 되는데, 금방이라도 달려가야 하는데, 하면서. 결승점이 눈앞에 보이는 시점이라 더더욱 그랬다.
그렇게 억울함을 속으로 폭발시켜 가던 가운데, 약을 줄이고 싶다는 충동이 반짝 고개를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기이한 충동은 아마 내 일상과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 하나라도 내 마음대로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나는 말 잘 듣는 환자잖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평생 약을 먹을 수는 없어.’
아직 증상이 잔존하고 완전한 관해기에 들어서지도 않았으면서 오만하게 자기 멋대로 진단을 내렸다. 아예 약을 안 먹는 짓을 감행하기는 어려웠던지라 소심하게 일탈을 시도했다. 위장보호제였다.
한국에서는 쓸데없이 약을 너무 많이 처방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난 다음 날 벌였던 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