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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플 Aug 31. 2023

모두가 아니라고 하면 나도 그렇구나 하게 되더라

늑대물린여자 03



당신은 류마티스 내과라는 곳이 무얼 하는 과인지 알고 있는가?


사실을 고하자면, 나는 내가 병에 걸리기 전까지 그런 과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내과 계열임에도 정형외과 옆에서 진료실을 나눠 쓰고 있던 구석진 그곳은 내겐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류마티스 내과를 물어물어 찾게 된 과정 또한 모두가 예상하듯 참으로 지난했다.






2021년 3월 말이었다. 수련을 시작한 지 한 달 반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거리에는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 봄의 한가운데, 욱신거리는 배를 움켜잡고 찾은 병원에서 맹장염 진단을 받았다. 맹장 쪽에서 염증 소견이 보인다며 터지기 전에 수술을 하자는 말에 나는 맹장수술을 하게 되었다. 맹장수술이야 많은 사람들이 하니 의사도 나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수술은 잘 끝내놓고 막상 수술실을 나와서가 문제였다.

평균적으로 2~3일 입원한 후 퇴원한다던 복강경 수술임에도 나는 일주일을 내리 입원해있어야 했다. 무통주사는 맞기만 하면 구토를 하고, 알레르기 반응이 음성인 항생제임에도 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이상반응이 나타났다.


의사가 회진을 오는 오전에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낮에는 나오는 죽도 어떻게든 먹을 수 있었다. 흰 죽에서는 쓴 맛이 느껴졌지만 빨리 건강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반그릇씩이나마 챙겨 먹었다. 걷기 운동과 복식호흡을 열심히 해야 장유착이 안된다는 주치의의 조언도 철석같이 들었다.


빙글빙글 병실을 한 시간씩 돌고 있자면, 나보다 나중에 수술한 다양한 나이대의 환자들이 새로 입원하는 모습이 보였다. 운동을 끝내고 남는 시간 동안에는 주어진 수련과제를 하겠다며 단원에 따라 잘게 갈라놓은 전공서적과 키보드를 붙잡고 공부를 했다.



“동생아, 동생아, 나 물 좀 가져다 줄래?” 

그렇게 무탈하게 낮을 보내면 뭘 하나, 밤만 되면 고통이 찾아오는데.

저녁을 먹고 병실들의 불이 꺼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내 몸은 열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이곳이 어디인지 헷갈렸다. 너무 목이 마르다고, 물 좀 가져다 달라고 동생을 찾을 정도로 헛소리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밤마다 열과 함께 찾아온 오한 때문에 오들오들 몸을 떠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양 겨드랑이에 얼음팩을 끼우며 열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못내 서러워 훌쩍거리다 보면 식은땀에 절어서는 새벽해와 함께 열도 내려가고 다시 증상도 가라앉았다

 멀쩡해지는 몸에 다행이라고 안도해야 하는 건지, 의사에게 보여야 할 때쯤에는 또 괜찮아지는 몸에 서러워야 하는 건지.


21년도도 코로나가 걸쳐져 있던 해 중 하나였다. 보호자 한 명 없이 혼자 병실생활을 하면서 나중에는 죽을 한입 뜨기가 어렵게 되었다. 입맛이 너무 없어지고 울렁거림이 24시간 내내 지속되었다.

큰일이다. 이렇게 안 먹으면 안 되는데. 빨리 건강해져야 하는데 싶었지만 몸이 내 맘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렇게 입에 집어넣는 것은 물밖에 없는데도 어디서 그렇게 나올 게 있는 건지.

복통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녹색 설사가 조금 무서웠다. 이런 색의 변은 난생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들에게 내가 이만큼 아프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지방에서 혼자 식당일을 하시는 어머니가 크게 걱정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는 말미에는 "곧 괜찮아지겠지."라는 낙관적인 전망으로 사족을 붙였다.


아픈 와중에도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수련이었다. 잘 좀 해보고 싶은데, 초반부터 이렇게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되는데 하며 조바심이 심장을 쿵쿵 두드렸다. 수련기관에도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몇 번이고 사과를 드리고 나서 전화를 끊은 나는 ‘아직 초반인데 찍혔으면 어떡하지.’ 라며 한참 동안 앞으로의 수련생활을 걱정했다.


매일 회진을 오면서 내 몸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던 주치의는 나중에는 “왜 몸이 그런 거냐.”, “이유가 뭔지 말을 좀 해보라.”라고 오히려 나를 타박했다.

이유를 알면 내가 의사겠지 환자겠나!

억울했지만 실없이 웃음을 흘리면서 “그러게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가 나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늦게 맹장 수술을 한 사람을 먼저 퇴원 보내고, 또 보내던 나는 일주일 내내 입원하고 나서야 열을 잡을 수 있었다. 혹시 열이 다시 오르면 먹으라는 해열제를 처방받고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하는 길, 봄볕의 햇살은 따뜻했고 위가 꼬르륵 우는 게 이제 몸에서 식사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 같았다. 

짐을 들어주러 온 막냇동생에게 “배고파!”라고 외치며 나는 올해 아홉수 액땜을 제대로 했다고 웃었다.


“아 정말. 올해 운이 얼마나 좋으려고 이렇게 액땜을 화끈하게 해?”


그것이 시작인 줄도 모르고.






혀에 구멍이 생겼다. 흔히 구내염 하면 피곤할 때 생기는 둥글고 하얀 모양의 염증이 떠오를 것이라. 그런 형태가 아니었다.

혀 가운데가 마치 빙하와 빙하 사이의 크레바스처럼 쩍쩍 갈라지더니 갈라진 사이가 깊게 파여 시뻘겋게 벌어졌다. 그 옆은 궤양이 생긴 것처럼 홍반이 번져 외계인 피부처럼 미끌거리는 모습으로 변했다.

너덜너덜해진 혀는 누가 봐도 아프겠다 싶은 모습이었으나 정작 나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매운 것을 먹을 때나 조금 따끔거리는 정도였기에 더욱 열심히 칫솔질을 했지만,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도 구강 내 궤양은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갈라진 틈 주위에 자잘하게 수가 늘었다.

내가 봐도 나의 혀가 아파보였기에 찾은 이비인후과에서는 피곤하면 이런 식으로도 염증이 생길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혀가 갈라지는 사람이 많아요. 통증이 없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겁니다.”


평이한 어조로 말한 의사는 구내염 약을 3일 치 처방해 주었다.


그 이후로도 자잘한 질병들이 순차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질염과 각막염, 장염, 그리고 식도염…….

원래도 골골거리는 몸이기는 했으나 이렇게까지 병을 달고 다니지는 않았는데. 이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낀 나는 수련생활 중에도 각종 병원을 찾았다.


“요즘 들어 몸이 이상한 것 같아요.”


확신하지 못하고 묻는 환자의 질문에 찾아간 병원마다 의사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젊은 나이라서 큰 질병은 아닐 겁니다.
피곤해서 그런 걸 겁니다. 비타민이나 홍삼 챙겨드세요.
운동은 하고 계세요? 햇볕이 좋으니 나가서 걷고 뛰고 하세요.



내 몸이 뭔가 이상해요. 이건, 그냥 질염이 아닌 것 같아요. 이건 그냥 구내염이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어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젊은 여성에게는 별다른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몸에 문제가 있었다면 맹장수술 때 혈액검사를 했으니 그때 뭔가 나왔을 것이다.

의사들의 소견은 일치했다.


다들 아니라고 하는데 혼자 맞다고 말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니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함에도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아픈 것은 기분 탓이고 요즘 수련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그게 몸으로 표현이 되는 건가 보다. 결국 전문가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했다.


네, 제가 예민한 사람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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