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피어난 꽃, 그리고 젊은 동료들에 대하여
작년 늦은 여름, 저는 실장으로 진급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께서 축하의 마음을 담아 난과 화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사무실에서 몇 차례 식물을 키운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물을 제때 주지 못하거나, 햇볕을 얼마나 쬐어야 하는지 살피지 않았고, 그렇게 시든 잎과 함께 마음도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되돌아보면, 그 식물들이 끝내 시들고 만 것은 단지 제 부주의만의 결과는 아니라고, 어딘가 마음 한편으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무실 구석에 두었을 뿐, 그것이 제 ‘책임’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은근슬쩍 돌봄을 미루고, 관심을 흘려보낸 날들이 쌓였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습니다.
진급이라는 개인적인 이정표 앞에서, 제게 주어진 화분들은 마치 어떤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아이들은 온전히 제 책임이라는 사실이 처음부터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다잡고, 이번만큼은 제대로 보살피리라 다짐했습니다.
햇살이 가장 오래 머무는 창가 자리를 골라 식물들을 옮겼습니다. 공기가 답답한 듯싶으면 창문을 조금 더 열어주고, 날이 흐리면 창 가까이 조금 더 끌어당겼습니다. 비가 오는 날엔 그 습도를 따라 물을 주고, 계절이 건조해질 땐 더 자주 흙을 만져보았습니다. 잎 끝이 마르면 잘라주고, 줄기가 처지면 손가락으로 가볍게 일으켜 세우듯 다듬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말을 건네게 되었습니다.
“잘 있었니?”
“오늘은 좀 더 자랐네.”
“너 참 예쁘게 컸구나.”
말은 건네지만, 정작 말을 들은 것은 제 쪽이었습니다.
한 생명을 온전히 돌본다는 것이, 돌봄을 받는 이만큼이나 돌보는 이의 마음을 다듬는 일임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그중 하나였던 난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잎은 늘 푸르고 단정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조용한 아침이었습니다. 화분 속에서 연두색의 아주 작은 싹 하나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작고 여린 그 색이 어찌나 반갑고 귀엽던지, 저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손으로 만지기엔 너무 어린 존재 같아, 그냥 눈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빛이 있다면 비추어주고, 물이 필요하다면 건네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문득, 사무실 안의 젊은 동료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막 함께하게 된 이들.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경력을 쌓아온 이들입니다. 업무는 빠르고, 이해력도 뛰어나며,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도 분명합니다. 미숙하다기보다는, 그저 인생의 경험이 조금 덜 쌓였을 뿐입니다. 저는 그들이 보여주는 젊음의 결을 볼 때마다, 마음이 한결 맑아집니다. 그 푸름과 싱그러움, 때때로 다듬어지지 않은 솔직함이 마치 방금 돋아난 연둣빛 잎처럼 생기 있고 예뻐 보입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나보다 먼저 도달할 이들이란 생각이 들고, 또 어떤 순간에는 아직 세상의 바람을 많이 맞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이 조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곁을 지키며, 햇살이 드는 방향만 조용히 가리켜주고 싶습니다.
사람도 식물처럼,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으로 자라납니다.
때로는 기다림이야말로 가장 깊은 응원이라는 것을, 식물들은 조용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아침 출근하면 가장 먼저 창가 화분들을 들여다봅니다. 어제보다 초록이 더 진해졌는지, 잎 끝이 말라가진 않았는지. 그 작은 변화 속에서, 저는 조용한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제 책상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젊은 동료들의 얼굴도 함께 떠오릅니다. 언젠가 그들도 자신만의 빛깔로 꽃을 피우겠지요. 저는 그저, 그 곁의 창이 되어주고 싶을 뿐입니다. 가끔은 바람을 막아주고, 가끔은 햇빛을 비춰주는 그런 사람으로요.
그런데 며칠 전, 오래도록 꽃을 피우지 않던 난 하나가 뜻밖의 봉오리를 올리더니 마침내 꽃을 피웠습니다. 난은 좀처럼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작은 꽃은 단순한 피어남이 아니라 오래된 기다림과 조용한 믿음의 증거일 것입니다.
그 꽃을 보며 저는 바랐습니다.
우리 동료들의 인생도 언젠가 빛나는 꽃을 피우기를.
그리고 저 또한, 그 옆에서
작지만 다정한 한 송이로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