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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릉이 찬가

두 바퀴 위에서 노래하는 서울의 아침

by papamoon

성북동의 이른 아침은 조용히 시작됩니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따릉이 한 대를 꺼내는 순간, 마음이 한층 가벼워집니다.
푸른 몸체 위에 올라, 페달을 천천히 밟기 시작하면 세상은 어느새 다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두 다리에서 시작된 리듬이 온몸을 타고 흐르며, 도시는 점차 맑은 얼굴을 드러냅니다.

뺨을 스치는 바람, 어깨 위에 머무는 햇살, 가로수 사이에서 반짝이는 나뭇잎의 모습까지
이 모든 것이 자전거의 속도 위에서만 허락되는 섬세한 감각입니다.

지하철의 터널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생생한 생의 온도, 그것이 자전거 위에는 있습니다.

따릉이 안장에 몸을 싣는 순간, 저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바퀴는 길을 굴러가고, 그 진동이 내 몸을 통과해 다시 심장을 두드립니다. 기계와 사람, 도시와 자연, 속도와 여유가 하나로 이어지는 완벽한 순환. 이 작고 조용한 움직임 안에 얼마나 많은 생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지, 자전거를 타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성북동 집에서 광화문 회사까지 보이는 길목 길목, 서울은 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줍니다.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꽃집, 오늘 처음 발견한 오래된 서점의 간판, 아침을 준비하는 카페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빛. 따릉이는 이 모든 것들을 스치지 않고, 곁에 두고 지나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은 그 절묘한 속도 덕분에, 도시는 살아 있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종로의 아침은 분주하지만, 따릉이는 그 복잡함 속에서도 유연합니다. 버스와 택시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가고, 신호등 앞에서는 잠시 숨을 고릅니다. 다시 초록불이 켜지면, 바퀴는 바람을 가르며 유려하게 나아갑니다. 이 모든 움직임이 흡사 하나의 안무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를 두 바퀴로 유영하는 기분입니다. 청계천을 따라 달릴 때면, 도시의 숨결이 더욱 가까이 느껴집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그리고 바퀴가 아스팔트를 굴러가는 부드러운 마찰음. 그 순간 저는 연주자이자 청중이며, 내 몸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서울의 리듬과 조용히 합을 맞춥니다. 광화문광장에 도착할 즈음이면 가슴 한 켠에 은근한 성취감이 머뭅니다. 도시의 심장부를 가장 인간적인 속도로 통과했다는 자부심, 그 어떤 교통수단도 줄 수 없는 잔잔한 기쁨이 온몸에 퍼집니다.


주말의 따릉이는 또 다른 즐거움 입니다.
사람들이 아직 꿈에서 깨어나기 전, 조용한 서울을 홀로 달리는 일은 그 자체로 특권처럼 느껴집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흐르는 새소리, 국립현대미술관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머무는 시원한 바람. 그 모든 것이 오롯이 저만을 위한 선물 같습니다. 삼청동 골목의 오르막길을 오를 땐 다리가 조금 아프지만 되레 마음은 더 가벼워집니다. 숨이 가빠질수록, 생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자전거는 언제나 제게 말합니다. 당신은 살아 있고, 지금 그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동안, 서울은 시처럼 다가옵니다. 인사동 찻집 앞을 지나며 스치는 차향, 종묘 담장 너머로 스며드는 고요한 공기, 청계천 물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이 한데 섞이는 시간. 그 모든 풍경들이 정교한 태피스트리처럼 이어져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계절마다 따릉이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봄엔 꽃잎이 어깨 위로 흩날리며 축복처럼 내리고, 여름 아침엔 바람이 등을 밀어줍니다. 가을이면 황금빛 은행잎이 길 위에 수놓아지고, 겨울 아침엔 하얀 입김 속에서 제 자신이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바람과 계절, 빛과 그림자가 두 바퀴 위에 함께 오릅니다.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춰 선 시간도 소중합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결을 읽고, 길가의 작은 꽃들과 눈을 마주치는 짧은 숨결의 순간. 그런 사소한 여백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 다시 삶이 됩니다.


서울은 원래부터 아름다운 도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따릉이를 타기 전까지는 그 아름다움을 이렇게 가까이서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높은 빌딩과 낮은 담장, 전통과 현대가 겹쳐진 거리, 모든 대비가 조화를 이루는 서울의 표정은 느린 속도 위에서야 비로소 보입니다. 따릉이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길과 연결하고, 계절과 연결하며, 무엇보다 나 자신과 이어주는 고요한 매개입니다. 페달을 밟는 힘이 체인을 타고 바퀴로, 그 진동이 다시 몸으로, 마음으로 번져갑니다. 기계와 사람이, 도시와 내가 하나로 이어지는 그 순간— 그것이 따릉이가 주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서울은 빠르게 흐르지만, 따릉이 위에선 그 흐름을 따라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오늘의 바람을 맞으며,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의 속도로 나아가면 됩니다.

성북동에서 광화문까지, 그 길은 이제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매일 아침 써 내려가는 한 편의 시가 되었습니다. 따릉이라는 펜으로 아스팔트 위에 천천히 그려내는 나만의 서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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