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앞에서 싸우지들 맙시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거실이 난장판이었다. 장난감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설거지는 쌓여 있고, 빨래는 소파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이거… 좀 치우고 쉬지.” 목소리를 낮췄지만, 날카로움이 묻어났다. 결국 내가 옷을 갈아 입은 뒤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릇을 씻으며 짜증은 점점 커졌다. 아내도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무거운 침묵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무거운 공기는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 됐다. 딸은은 아침에 일어나 아빠, 엄마를 번갈아 보더니 조용히 옆으로 다가왔다.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가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닌데, 딸은 알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 사이의 공기가 차갑다는 걸. 평소처럼 장난치지도, 밝게 웃지도 않았다. 부모 사이의 차가운 공기를, 서로에게 건네지 않는 말을, 피하는 눈빛을 아이도 느낀다. 그날 밤, 딸을 재운 후 아내와 마주 앉았다. 둘 다 말이 없었다. 오랜 침묵 끝에 아내가 먼저 말했다. “아이가 눈치 보잖아.”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우리는 다짐했다. 다시는 아이에게 차가운 공기를 느끼게 해주지 말자고.
육아를 하며 부부가 싸운다는 건 불가피하다. 싸울 일이 거실에 널린 장난감보다 많다. 특히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면 더욱 그렇다. 여유가 없다. 쉴 틈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한 가지라도 어긋나는 순간,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대부분 싸우는 이유는 단순했다. ‘해야 할 걸 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집에 들어오면 먼저 집안일을 한다. 설거지를 하고, 장난감을 정리하고, 빨래를 개고, 그다음에 내 일을 한다. 하지만 아내는 순서가 반대다. 먼저 자신의 일을 하거나 쉬고, 나중에 집안일을 한다. 처음엔 이해했다. 사람마다 방식이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짜증이 쌓였다. 아내는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났다.
우리 부부는 화가 나면 말을 안 한다. 냉랭한 침묵, 짧은 대답, 피하는 눈빛. 그게 우리의 싸움 방식이었다.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침묵 속에는 서운함과 섭섭함이 가득했다. 아내도 억울했다.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해?”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었고,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했다. 부부는 맞물린 퍼즐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그림을 맞추고 있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부모의 감정 상태를 잘 감지한다.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차가운 공기만으로도 아이는 안다. 나도 그랬다. 부모님이 말을 안 하는 날이 있었다.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그 불안감. 어린 나는 혼자 조용히 방에 있으며 두려워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싸움을 ‘자기 탓’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이를 보고한다. 부모가 말을 안 하고, 서로 피하면, 아이는 “내가 착하지 않아서 그런가?”, “내가 말을 안 들어서 그런가?“라고 생각한다. 왜 너희 탓이니. 절대 아닌데.
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세상의 전부’다. 그런 부모 사이가 냉랭하다는 걸 본다는 건, 세상이 흔들리는 경험이다. 특히 만 3세 이하의 유아에게는 치명적이다. 이 시기 아이들은 언어보다 감정, 안정감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부모의 차가운 분위기가 반복되면, 아이는 정서 불안, 위축된 성격, 눈치 보는 행동 등을 보일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부부 갈등을 경험한 아이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1.4배, 미래에 부부 폭력을 행사할 확률이 3배, 자기 자녀를 학대할 확률이 5배 높다고 한다.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냉전도 아이에게 상처가 된다.
아내와 세 가지 약속을 만들었다. 첫번째 약속은 아이 앞에서는 다투지 않기다. 화가 나도, 억울해도, 아이 앞에서는 최대한 평소처럼 대한다. 말을 안 하는 것도 싸움이라는 걸 인정했다. 침묵도 아이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아침에 급하게 준비하는데 아내가 늦장을 부렸다. 짜증이 났다. 예전 같았으면 말을 안 하고 혼자 삐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딸이 옆에 있었다. 평소처럼 “빨리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그리고 저녁에 아이를를 재운 후 아내에게 말했다. “아침에 우리 같이 준비하면 안 될까?” 아내도 차분하게 답했다. “미안해. 나도 정신없었어. 다음부턴 더 신경 쓸게.” 아이 앞에서 참았더니, 저녁엔 감정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침의 그 짜증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시간이 감정을 식혀줬다.
두번째 약속은 화가 나면 일단 한 번 더 말한다. 화가 나면 바로 입을 다물었다. 말 안 하는 게 싸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말을 안 하면 상대는 모른다. 내가 왜 화났는지, 무엇이 서운한지. 이제는 화가 나도 일단 한 번 더 말하려고 노력한다. “나 지금 좀 화났어. 설거지를 매번 내가 하는 것 같아서.”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렇다고 폭발시키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처음엔 어색했다. 화났다고 말하는 게 약해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말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아내도 내 마음을 알게 되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침묵은 해결이 아니라 회피였다. 마지막으로 자기 전 꼭 화해한다. 낮에 언짢은 일이 있어도, 자기 전에는 꼭 화해하기로 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손을 잡고, 내일은 더 잘하자고 다짐한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해 어려웠다. 하지만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어느 날은 내가 아내에게 날 선 말을 했다. “당신은 맨날 그래.” 아내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 내내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자기 전, 나는 아내에게 다가가 말했다. “미안해. 내가 너무 했어. 화풀이한 거 같아.”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미안해. 내가 더 신경 쓸게.” 감정을 하루 안에 해소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우리가 싸운 이유는 ‘순서’의 차이였다. 나는 집안일을 먼저 하고, 아내는 나중에 한다. 그 차이 때문에 싸운 게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배려의 부족’이었다. 나는 내가 먼저 집안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아내도 그걸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하지만, 결국은 한다’ 이 아치를 인정하지 못했다. 아내의 행동이 아니라, 내 기대가 문제였다. 그 후로 조금씩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기대를 내려놓으니 아내도 달라졌다. “고마워”라고 더 자주 말했고, 집안일도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니 관계가 편안해졌다.
우리 가족은 자기 전 감사한 일을 나눈다. 작은 것도 괜찮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감사해”, “아빠가 설거지해줘서 감사해”, “딸이 웃어줘서 감사해”. 냉전이 있던 날도 어김없이 감사함을 나눈다. 처음엔 어색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감사를 나누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녹아내렸다.”저녁 준비해줘서 고마워.” 이 한마디가 앙금을 풀어줬다. 매일 감사를 나누다 보니, 상대의 작은 배려도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당연하게 여긴 것들이, 이제는 감사하게 느껴졌다. 아침 식사를 준비해준 것, 쓰레기를 버린 것, 웃으며 맞이해준 것 이 모든 게 감사였다. 우리 부부는 여전히 싸운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빨리 회복한다는 것이다. 아이 앞에서 냉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화가 나도 말로 표현하고, 자기 전엔 꼭 화해한다. 부부싸움은 부모싸움이 된다. 다툼도 훈련이다. 부모가 흔들려도 괜찮다. 다시 손을 잡으면 된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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