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 3주 계획
걱정을 시험의 쫄림(?)으로 잊겠다는 나의 전략은 완벽하게 나에게 통했다.
장장 30만 원에 해당하는 시험 접수비는 이 프랑스 시골에서 한 달 치 식재료를 살 수 있는 돈이고, 생각보다 작고 귀여운 나의 씀씀이는 금세 스스로의 발등에 불을 지폈다.
'미쳤어?! 한 번에 가자!'
발등의 불이 지펴지니 두뇌는 빠르게 돌기 시작한다. 이건 '완벽한 계획'이라도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하얀 노트에 숫자들을 나열했다. 시험까지 남은 날짜들이었다. 몇개 되지도 않은 숫자들을 보니 당혹스러웠다. 벌써 시험을 결제한 지 어느새 일주일이나 흘러 나에게 남은 시간이 고작 25일 뿐이었다. 가뜩이나 급하게 잡은 시험이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일주일이 벌써 어디갔어?"
어디가긴, 일주일은 밥벌이를 하러 갔다. 시험을 결제하자마자 바로 그날 저녁부터 어떻게 알고 딱 맞춰 업무가 쏟아졌다. 고등학생때 처럼 공부만 한다고 밥이 나오지 않기에, 나의 일주일은 그렇게 나의 생존을 위해 장렬히 전사했다. 하지만 뭔가 놀지도 못했는데, 책임만 지는 듯 한 기분이 들어 조금 억울한 마음이다.
25일이란 숫자는 3주라기엔 4/7 만큼이나 더 길고, 4주라기엔 3일이나 비어 애매한 숫자 같아 보이지만 사실, 나의 '완벽한 계획'에 딱 맞는 숫자에 어울리는 숫자다. 내가 최선을 다해 달릴 수 있는 '3주'란 시간과 몸풀기 시간 '3일'을 제하고도 오늘 하루가 남으니 말이다. 무슨말이냐고? 결국 '내일부터'라는 말이지.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졌을때 부터 나는 카운트다운형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했고 잘했다. 시험까지 남은 일수를 계산하고 그에 알맞는 공부량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명문대를 다닌다던 나의 과외선생님조차 내가 짜 놓은 '시험공부 계획표'는 극찬했었더랬다.
하지만 문제는 늘 나였다.
나는 제우스도 혀를 내두를 벼락치기의 달인. 어떤 시험이든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다가 '아, 더는 안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서야 움직이는 사람이다. 하다못해 운전면허 도로주행 시험 조차 벼락치기로 끝냈었는데, 시험 바로 전날 코스 4개를 급하게 암기하느라 시험보는 내내 영단어를 외우듯 '여기서 정지선. 속도 느리게, 전광판 지나 차선변경, 세번째 가로등 뉴터-어언'을 중얼거리며 운전했다. 시험채점관분께서도 "아니 여기서만 운전할꺼에요? 그걸 그냥 외웠어?" 라고 타박은 하셨지만 결과는 합격이었다.
지피지기.
인생이 백전백승은 아니었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끈기가 부족한 나에게는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라는걸 일찌감치 인정하고 받아드린걸 보면 말이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이는 '완벽한 계획'은 사실 지키기위해서 세운다기 보다는 언제부터 달리면 되는지 간을 보는 작업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짧은 시간내에 모든것을 화르륵 불태우는 것을 즐긴다.
여하튼, 말은 급하다고 하고 있지만 내심 오랫만에 느끼는 이런 쫄리는(?) 기분이 짜릿하다. 모든것이 느릿느릿한 프랑스의 생활에 젖어 축축해졌던 마음이 화르륵 불타오른 열기덕에 뽀송해져가는 기분이 든다. 퇴사에 걸맞는 벼락치기이다. 역시! 현질로 시험이라는 근심을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명한 소비였군."
이번에도 나는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꼭 해야할 분량 만큼의 공부량만을 정하고, 스스로 사용 가능한 퇴근 이후의 가용시간과 요일등을 확인해서 알맞게 배분한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물론 아까 말한대로 3주와 3일을 더한만큼을 뺀 24일이 필요하니 계획실천은 내일부터 할 요량이다.
30대 중반을 지나가는 여전히 언제나 계획은 완벽하다, 나를빼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