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프랑스 실업자에 성공할 수 있을까?

퇴사 2달 전

by papeltina

퇴사를 두 달 앞둔 이 시점에 뜬금없이 반성해 보자면, 나는..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른다. 물론 장기체류증을 준비하면서 부랴부랴 한국식 시험대비 방법으로 따둔 DELF 자격증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삶에는 전~혀, 정말 단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게다가 프랑스 국가 기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일을 할 때 주 언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퇴근 후 안타까운 내 영어 실력을 향상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프랑스어는 손대본 적이 단연코 없다.


그럼 이런 프랑스어 실력으로 프랑스에서 5년간 생활은 어찌했냐고?


사실, 프랑스 초기 정착시기부터 나는 초청 비자로 오게 된 덕분에, 기관에서 따로 나의 행정절차를 담당해 주는 분이 배정됐었고, 그분의 도움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큰! 도움으로) 첫 체류증 신청부터, 체류증 연장, 꺅트비탈(의료보험), 연말정산 등이 일사천리로 수월하게 진행됐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다행히 좋은 이웃들과 좋은 부동산 중개인, 하다못해 좋은 경시청 직원분들만 만난 덕에 나의 이 비루한 프랑스어 실력과는 무관하게 무사히 영어로도 잘 생존해 왔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홀로서기를 하려고 보니, 이 애증의 직장은(그동안 나는 몰랐지만;;) 보호막이자 튼튼한 울타리였다. 그동안엔 몰랐던 울타리 밖은 빗발치는 프랑스어의 아수라장이었다. 당장 실업급여와 관련해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하려고 뽈엉쁠루아(pole-emploi; 프랑스고용공단) 홈페이지에 직접 접속하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지며 느낌이 왔다.


'어떻게.. 하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프랑스어뿐이었다. 구글 번역으로 홈페이지를 번역해 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문장들의 향연이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나의 행정과 관련된 일들을 처리해 주신 담당자님께 당~연히 실업급여에 관련한 도움은 요청할 수도 없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거기에도 '프랑스 실업'에 관련된 정보보다는 '프랑스 취업'에 관련된 정보들만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갑자기 SNS에서 떠돌던 '콩쥐와 개구리' 속 개구리가 떠올랐다.



깨진 독을 막지 못하는 개구리와 슬퍼하는 콩쥐. jpg (출처 https://arca.live/b/singbung/51985037)


대책 없이 실업자를 꿈꾸기만 한 과거의 내가 야속했다. 실업자도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구나.


내 나라 한국에서도 학교만 다니다 30살이 되어버려 실업급여니 연말정산이니 하는 단어들은 접해볼 기회도 없었는데 말도 안 통하는 이 나라에서 할 줄 모르는 언어로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실업자 라이프를 즐겨보려 했다니. 스스로도 용기만 가상했구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프랑스 실업자도 준비가 필요했고, 성공 여부가 결정되어야 했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으며, 남의 돈 받기가 최고 어렵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구나 싶다. 가아~끔 가뭄에 콩 나듯 하나씩 있는 뽈엉쁠루아(pole-emploi; 프랑스고용공단)에 다녀온 한국인 후기들을 찾긴 했지만 읽다 보니 더 암담하다. 실업급여 대상자를 선정하는 평가원이 프랑스어를 쏟아내면 그걸 맞받아쳐가며 불필요한 교육을 거절하고 그러면서도 대상자에 선발되어야 한다니. 다달이 집 월세만큼을 세금으로 내는 외국인 지식노동자는 벌써부터 서운함과 서러움이 몰려온다.


더 슬픈 건! 그렇다고 실업급여를 포기할 수도 없다. 퇴사 이후의 자유로운 삶만 꿈꾸며 행복해했던 나는 결국 퇴사를 앞둔 남은 두 달도 할 일이 지척이구나 싶어 한숨만 나온다. 숨이 차게 달리는 일상에 지쳐서 퇴사를 하려고 했더니 퇴사를 준비하다 오히려 더 지쳐 돌아가실 노릇이다. 실업자도 바늘구멍을 뚫는 노력이 필요하다니. 세상살이가 참 쉽지가 않다.


나는 그렇게 프랑스 실업자를 꿈꾸며, 토플 영단어 책 옆으로 미뤄왔던 프랑스어 공부책을 꽂았다.

나 성공적으로 프랑스 실업자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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