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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peltina Feb 16. 2024

암 연구원인데,  암에 걸려요?

암, 그 암적인 존재에 대하여

"환자분, 여기 연구 동의서와 유전자 검사 동의서입니다 서명해 주세요."

"네에-"


하얀 가운의 선생님이 내민 서류에, 남편은 해맑은 미소로 서명을 합니다.

불과 몇 분 전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입니다.


"연구 동의서만 봐도 좋냐?"

"그럼! 뭔가 아직 일하는 기분이 들어서 엄청 좋아"


암 수술을 앞두고 걱정도 안 되는지, 해맑게 '엄~청 좋다' 말하는 남편을 보니 기가 찹니다.

하기사 갑작스러운 경련으로 쓰러져 실려갈 때도, 남편은 실험실에 남겨둔 환자 혈액을 냉동실에 잘 넣어놨는지만 수십 번 물었었습니다. 수술 날짜를 받고도 가장 먼저 한 일이, 왼손으로 파이펫팅(실험실에서 기본적으로 쓰는 도구인 파이펫을 다루는 행동) 연습이었고요. 그 꼴(?)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울컥 속에 천불이 솟구쳤지만 꾸-욱 잘 참아냈습니다.


아프다고 갑자기 철이 들리 없고,
철없다고 아픈 사람에게 화낼 수 없으니,
보호자는 화도
잘 삼킬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암에 걸린 제 남편도, (바이러스이긴 하지만) 저와 같은 기초 의학 연구원입니다.

저희는 대학 때, 대학원 진학 스터디에서 만나,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습니다. 그 이후로 쭉 같은 기관에서 연구활동을 했죠. 대학 졸업부터니까, 어머! 벌써 10년 넘게 암, 이 녀석을 함께 연구했네요. 사실, 연구라고 거창하게 말하기엔 아직 저흰 풋내기니, 그냥 관찰하고 공부했다는 표현이 더 걸맞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년을 넘게 지켜본 건데도... 이놈의 암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악성종양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막막한 건 다른 보호자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빠가 이렇게까지 아플 동안 너 왜 몰랐어?'

'오빠가 잘못되면 너 어떻게 할꺼야?'


끊임없는 죄책감과 자기 비난도 같습니다.


다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이럴때 저는 울기보단 남편의 종양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찾아 읽곤 합니다.

'아는 게 힘'이 될지, '모르는 게 약'이 될지 모를 일이지만, 이런거라도 해야 남편에게 도움이 될꺼라 스스로 위안이 되니까요. 그렇게 하나, 둘 논문을 찾아, 실린 결과들을 꼼꼼히 읽어나가다 보면 남편이 겪을 다음 과정도 어느정도 예측이 됩니다.   


아직 남편의 암이 발생하는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항암제 반응성이나 공격성을 예측해볼 수 있는 바이오 마커들은 있으니 수술이 끝나면 몇 등급의 암인지와 함께, 향후 남편에게 더 적합한 치료 방향이 정해지겠구나 싶었습니다.


'남편에게 좀 더 적합한 치료 방향'이라니!

왠지 말 만 들어도 다음 치료 효과가 긍정적일 것 같아 희망이 보였습니다.




20여 년 전쯤인가?

저는, 유전자검사니, 바이오마커니 같은 것들이 없던 시절의 암 치료가 어땠는지 어렴풋이나마 기억을 합니다. 제겐 엄마 같은 외할머니께서 암 환자 이셨거든요.

한 2년 가까운 투병기간 동안, 환자였던 할머니도, 보호자였던 엄마도, 지켜보는 저와 아빠, 동생들도 가장 힘들었던 게 있습니다. 바로 고열도, 오심도, 구토와 할머니의 짜증도, 돈도 체력도 아닌 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걸릴지, 약이 들지, 안 들지
아무도,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바로 그 깜깜한 시간말입니다.



암이란 녀석은, 워낙에 생기는 위치나 상황,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바뀌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완벽한 예측이라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 정도 예측만으로도 오빠의 시간은 20년 전만큼 캄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건 보호자인 저의 시간도 마친가지겠죠.   


저는 이 마커들이 발견되고 사용되기까지 수도 없이 검증하고 또 검증했을 많은 논문들의 저자들에게 감사함이 밀려왔습니다. '조금 만 더, 어쩌면 이번엔, 한 번만 더.'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낸 이 결과들이 20년 전과 다른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미지근한 감자인 '이공계학술연구 지원예산 축소' 기사는 마음이 아프기만 합니다. 암 연구원으로서도, 암 환자 보호자로서도 말이지요.


의료진들처럼 존경받는 최전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암과의 전쟁에서 참여자로 묵묵히 기지에서 일한 연구원들의 노고가 별것 아닌 노력으로 치부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지원 예산 축소를 주장하는 쪽의 말처럼 '단기적 효율성'으로만 보면 연구 활동은 비합리적인 활동이긴 합니다. 연구 결과는 대게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필요하니까요.


연구원에게도 5년, 10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30대의 어른이 되는 시간이니까요. 사회에 나간 누군가는 차를, 결혼을, 효도를 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연구원들은 연구를 한다는 이유로 그 시간들을 몽땅 다, 어떤 불확실을 조금이라도 확실에 가깝게 하는 데에만 사용해야 하니까요.


어찌 보면 사명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제 남편의 치료 방향을 정할 유전자 검사 결과도 그렇게 수 십 명의 5년과 10년의 사명감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겠죠. 그런데 아무리 암 환자 보호자로서도 연구원으로서도 기초학술 연구가 꼭 필요한 일이라 이렇게 주장한다고 해도, 단순히 효율성과 합리성으로 다그치면 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일개 연구원이자 보호자인 저는,
다만, 20년쯤 뒤
또 다른 어떤 암 보호자의 시간이
더 어두워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새댁, 일 해?"


앞쪽 병상에 계신 할아버지의 보호자 분이 커튼을 살포시 여시며 부르셨습니다.


"네? 아.. 아뇨"

"이거, 귤인데 좀 먹어봐. 보호자도 뭘 먹어야 살지."


남편이 아프고 통 먹질 못한 저도 저지만, 어제 하루종일 섬망증세를 보이시는 할아버지를 간호하시느라 귤을 나눠 주시는 할아버지의 보호자분께서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셨습니다.

따뜻한 미소로 손에 쥐어주신 귤 몇 개가 시원했습니다.


"근데, 새댁은 무슨 일해?"

"아.. 저는 암 연구원이에요"

"잉?"

"과학자예요, 과학자"


제 직업을 말하면 어르신들께서 늘 짓는 표정이라 이제는 익숙합니다.


"아니, 알아 나도 연구원. 암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거 아녀?"

"네 맞아요."

"아이고야, 근데도 암에 걸렸네?"


머쓱하기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어르신을 따라 같이 웃었습니다.


"네, 암 연구원도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그런가, 암에 걸리고 그러네요. 공부를 더해야 하나 봐요. 하하"

"그러네. 연구 좀 열~심히 해서 암에 안 걸리게 좀 해봐."


그러겠노라 말하는 목구멍이 꽉 막히듯 무거웠습니다.

암 연구원뿐만 아니라, 보통의 많은 분들도

암에 안 걸리는, 행여 걸려도 쉽게 극복되는,

그런 세상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

암 보호자로서도 암 연구원으로서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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