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좋은 음식이란 뭘까
"여보, 나 뭐 먹으면 돼?"
수술이 끝나고 친정에 간단히 짐을 푸는데 남편이 묻습니다.
저는 대답을 하지 못했죠. 솔직하게 저도.. 뭘 먹으면 되는지 모르겠었거든요.
"글쎄..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한 속마음이 담긴 말이 덜렁 내뱉어졌습니다.
한 4년 전쯤, 남편과 제가 두어 달 채식을 하며 몸이 좋아졌었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좀 다르니까요.
혹시나 싶어 퇴원할 때 받은 안내문을 펼쳐보았습니다. 내심 정답을 기대한 안내문에는 '골고루 먹으면 된다'라고만 달랑 적혀있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쩐지 허탈함을 넘어 병원에 서운한 마음까지 듭니다. 보호자에게 그 말은, 오늘 막 실험실에 입학했는데, 대뜸 논문부터 써봐라 하는 듯 한 기분을 들게 했거든요.
당장, 나는 지금부터
사랑하는 사람의 생사를 위해
암과 싸워 이길 음식을 골라야 하는데,
그냥 '골고루 드세요'라니...
남편과 같은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환우와 보호자 분들이 모인 인터넷 모임에도 들어가 봤지만, 정답이 없긴 매 한 가지였습니다.
누군 녹즙을 먹었다고 하고, 누구는 채식을, 누군 키토식단을, 누구는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었다고 했습니다. 조리법도 다양해서 누군 삶아서 먹었다고 했고, 누군 착즙 해야 한다고 했고, 누군 생으로만 섭취했다고도 했습니다.
'암 환자에게 좋은 음식'이란 주제로 논문을 쓰면, 아마 죽을 때까지 다 못쓰고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정보 속에서 과연 제가, 남편이 굶어 죽기 전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도 싶었고요.
10년동안 열심히 일구고 가꿔온 저의 자식 같은 지식들도 도움이 되긴 커녕, 더 머리를 아프게 했습니다.
'붉은 고기류는 피하세요'를 읽으면,
가뜩이나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환자인데 단백질 공급이 부족해지면 항체생성이나 면역물질 생성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과일은 충분히 섭취하세요'라는 글을 보면,
생으로 먹는 과일이나 채소를 통해서도 '노로바이러스'가 감염된다는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수술 후 먹고 있는 약 때문에 남편의 혈당이 높아져 있는 상태라 과일에 함유된 당이 위험하진 않을까 싶었고요.
채소는 채소대로 가뜩이나 많은 양의 약을 해독하고 있는 간에게 채소의 독소가 더 무리가 되면 어쩌나? 싶고,
유제품은 성장인자가 포함되어 있는 제품이라 암 성장에 영향을 줄까 싶어 무서웠습니다.
사골은 지방이 너무 많다고 해서, 생선은 중금속 문제 때문에, 해산물은 방사능 이슈가 마음에 걸리더군요.
그렇게 하나하나 좋다는 식단을 따지고 들다 보니 면역력이 약한 환자에게,
아니, 다른 누구도 아닌 암에 걸린 내 남편에게!
괜찮고 안전한 식품은 이 세상에 없어 보였습니다.
이러다 정말,
암과 싸우기도 전에
굶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저는 검증된 출처 하나씩들은 가지고 있는 수~ 많은 항암 식품 정보들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정답도 없는 문제를 푼다고 매달리고만 있으니 성격은 점점 더 날카로워져 갔습니다.
좋다는 건 자꾸만 더 추가시켜서 먹이고 싶고, 안좋다는 건 절대 못 먹게 하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었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자꾸만 더, 조금만 더 찾아보고 읽고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러다 어제도 '아무거나 잘만 먹으면 된다'는 시부모님에게 화를 버럭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껏 예민해진 언니를 맞춰만 주던 동생이, 도저히 안되겠는지 오늘 아침 말을 꺼냈습니다.
"언니 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암은 음식 때문에 생겨?"
"뭐?"
"암이 음식 때문에 생기는 거냐고.
언닌 암 연구원이니까
공부했을 거 아냐"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니.. 뭐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는데.."
"근데?"
"근데... 어.. 그러니까..."
"언니, 그럼 암은 왜 생겨?"
동생의 질문은 하나뿐인 남편의 보호자가 아닌, 암을 공부하는 암 연구원이 대답해야 할 질문이었습니다.
'뭘 먹여야 하나'만 고민하던 머릿속에서 10년을 넘게 읽고 공부한 논문들이 이제야 겨우 비집고 올랐습니다.
그 속엔, 암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된 인자들이나, 암 유발 단백질들, 다양한 세포의 방어 기전들과 암의 전이과정을 유발하는 신호 단백질들, 재발이나 항암제 내성이 생기는 과정의 메커니즘등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머리 한 가운데를 휘익- 하고 쓸고 지나간 기분이었습니다.
암은 애당초 한 가지 조건만으로 통제될 수 있는 결과가 아닙니다.
암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은 가장 기초적인 사실이고요.
그런데도 저는 그 부분은 아예 간과한 채, 남편의 '식이'에 한번이라도 실수가 생기면, 남편을 잃을 것 처럼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식이'가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꽤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라는 사실인건 맞지만, 그걸로만은 암을 극복할 수는 없는데도 말입니다.
오랫만에 연구원인 제가 돌아온 순간이었죠.
그래도 여전히 보호자로서의 저는 남들이 좋다는 거, 남들도 다 먹는 중이라는 거, 남들이 먹고 나았다는 건 다 해주고 싶습니다. 아무리 암을 안다고 자부하고, 논문을 쓰고, 특허를 등록했어도, 결국 암 앞에서 보호자는 간절함만 남으니까요.
지금도 저희 부부는 어떤 걸 먹어야 하는지 매일, 매일 고민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히 '뭘 먹으면 좋다더라'라는 건 저희 부부 같은 암 투병 새내기들은 알 지도, 말할 수도 없고요.
암을 연구하는 연구원으로서도 무엇을 먹어야 재발을 막고, 전이를 늦추고, 암을 졸업할 수 있을지 여전히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험들을 빗대어 생각해 보면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제 남편이라는 조건 안에서
어떤 음식이 좋을지 나쁠지는
오직 제 남편 세포들만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실험을 하다 보면, 연구 결과는 조건을 어떻게 세팅하느냐, 참여 인원을 누구로 정하느냐 등과 같이 사소한 조건 변화에도 크게 영향을 받아 곧 잘 달라지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설사, 하나의 공통된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그 결과가 개개인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칠지는 절대 확신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오랜 기간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serum starvation stimulation(세포에게 영양분이 못 가게 만드는 조건)이 최근 논문에선 대장암세포가 침습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보고 된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나쁜지 규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논문 속 결과는, 맞고, 틀린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설정한 조건 안에서 모두가 진실인 결과 들일뿐이니까요.
그래서 저흰, 암과 함께 살아가야 할 남은 인생을 위해 음식 고르는 조건 몇 가지만 정해두기로 했습니다. 이 커다란 틀 안에서 조금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살아볼 작정입니다.
* 가급적 성장인자가 포함된 음식은 섭취를 제한하기
* 채소는 그 종류에 따라 영양소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조리법으로 맞춰서 조리하기
* 가공식품과 이미 조리된 식품은 아예 먹지 않기
* 과식은 절대 하지 않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골고루 드세요'와 같은 문장 같긴 하네요 하하.
벌써 저녁시간입니다.
암 연구원도 암 환자 보호자도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어야 하나'는 늘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