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고사리는 버스에서 내리는 짧은 틈에 환히 웃으며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뭔가 뭉클했다. 따스함이 아직도 남아있다. 온기 한 줌이 마음 안에 자리 잡았다. 내가 처음 기억하는 고사리와 지금의 고사리는 완전 다른 사람같다.
고사리를 처음 만났을 때, 고사리는 타인에 대한 경계심 가득한 긴장을 놓지 않는 예민한 모습이었다. 오래 방치된 폐허의 냄새가 났다. 발 들이고 싶지 않았다. 고사리는 뾰족했고 불편했다. 괴로워 보였다.
3년이 흘러 고사리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고사리는 줄을 엮어서 거미줄처럼 엮어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물의 그림자 형태와 위치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혼잣말을 했다. 그녀를 보는데 묘하게 편안했고 자꾸 말 걸고 싶은 마음이 피어났다.
마침 질문할 틈이 주어졌고 "전과 달리 가벼워지고 밝아 보여요. 궁금해요.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고사리는 반갑게 질문에 답해주었다. 고사리에게는 유년에 아버지를 잃은 짙고 깊은 아픔이 있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헤어 나오질 못했다 한다.
"아마... 노랑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엄청 울었는데 그러고 나니 좋아졌어요."
노랑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그림책이다. 유년. 그림책을 통해 아버지와 함께했던 순간을 마주하고 다시 만난 것이다.
또다시 4년 정도가 흘러 만난 고사리. 그녀는 더더욱 환해지고, 열정 넘치며, 부드러웠다. 점심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술 한 잔을 나눈 짧은 만남이었지만 마음이 가까워져 있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고사리는 불쑥 "고라니 씨랑 이야기 나누는 게 즐겁네요."라고 말했다. 나도 똑같았다.
고사리는 나에게 말린 고사리를 선물했다. 지퍼팩에 담겨 있는데도 고사리 냄새가 계속 올라왔다. 또다시 수 년이 흘러 고사리를 만나도 반가울 것 같다. 대화도 즐거울 것 같다. 지속되는 우정은 희망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