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과 함께
겹벚꽃 이후, 오랜만에 선암사로 나섰다. 오늘 동행책은 한정원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아끼는 마음에 책을 종이봉투에 넣었다. 선암사는 늘 좋다. 한가로이 걸으며 햇살 좋다. 공기 좋다. 나무 냄새 좋다. 너무 좋았나 보다. 텀블러에서 물이 새서 가방을 다 적시고도 모자라 물이 뚝뚝 떨어져 바지까지 젖어 있었다. 후다닥 책을 꺼냈다. 종이봉투에 넣어 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책의 모서리 부분이 젖어서 하얗게 살짝 닳아있었다. 젖은 가방에 책을 다시 넣을 수 없어서 들고 다녔다. 다음부터는 종이봉투 대신비닐봉지를 이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무 벤치에 앉아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펼쳤다. 같은 페이지를 읽고 또 읽었다. 이 순간의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서 녹음 버튼을 누르고 낭독을 했다. 다시 들어보니 매미소리까지 담겨 있었다.
아직, 상사화가 피어 있고 피려 하고. 몰랐던 옥잠화도 보게 되었다. 옥잠화를 보고 있으니 그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선암사를 나오는 길에 파리풀을 만났다.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마음속에다 스케치를 했다.
산채 비빔밥과 파전을 고민하다가 파전을 주문했다. 다 못 먹겠어. 따끈따끈하고 너른 파전. 저만큼 남은 파전은 싸 달라고 해야지. 먹을 부분과 포장할 부분을 눈으로 선을 그었다. 선긋기는 괜한 짓이었다. 파전 한 접시를 말끔히 다 먹고,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들을 곱씹었다.
선암사에 오면 마음이 걷고 마음이 보고 마음이 그리워한다.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을 때 본능적으로 오게 된다. 마음을 되살리고, 보듬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