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고마리
오늘은 조례호수 도서관을 살짝 벗어나 분수가 보이는 호수공원 근처에서 야생풀을 그린다. 코끼리 귀 마냥 펄럭이는 수많은 연잎이 초록빛으로 넘실거렸다. 호수라기보다 연잎 바다 같다. 마음도 덩달아 출렁출렁.
무얼 그리게 될까.
끌리는 풀을 찾아 공원 주변을 기웃거렸다. 말끔하게 정리된 잔디 틈에 야생풀이 돋아날 구멍은 없어 보였다. 사람의 시선과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인 의자 밑, 관목 아래에 질경이, 강아지풀, 애기땅빈대 등이 보였다. 아는 풀 말고 모르는 풀을 그리고 싶었다. 모르는 풀을 찾아 호수 가까이 다가갔다.
호수 가장자리 쪽으로 징검돌이 보였다. 오! 저기로 내려가면 뭔가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풀들이 다리를 스칠 뿐인데 곤충이 다리에 붙은 줄 알고 몇 번이나 화들짝 놀랐다.
잎사귀가 원형이 아닌, 입이 뾰족한 물고기 모양이다. 잎사귀 표면에 진초록 색감의 왕관 무늬도 돋보인다. 잎맥은 어성초와 닮았다.
'고마리'라는 이름의 풀이었다. 오! 이름이 마음에 든다. 내 브런치 닉네임 고라니. 고마리. 이름 만으로도 꿍짝이 맞는다. 고마리 꽃은 어떻게 생겼을까. 꽃은 언제 필까. 어떤 색일까. 궁금해하며 고마리를 살펴보았다.
"저쪽에서는 식물 본뜨기를 하네요."
식물 대고 그리기. 그런 방법이 있다니. 당장 써먹기로 했다. 음. 본뜨기도 쉽지는 않았다. 다시 펜으로 스케치를 했는데, 실물보다 둥실한 고마리가 그려졌다. 잎과 줄기에 미세한 잔털이 보였다. 어쩌다 그만, 털에 꽂혀버렸다. 고마리 이파리마다 한 올 한 올 털로 채워갔다. 털을 반복해서 그리는데 마음이 편안하니 즐거워졌다.
투실투실 살 찌우고, 검은 털 천지인 내가 그린 고마리를 고마리라 불러도 될는지. 고마리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털, 고마해라. 많이 그렸다 아이가."
아니지. 여기는 경상도가 아니라 전라도니까...
"아따, 털 징하게 그려븐다. 그만해라잉. 더 하면 확 조사불랑께."
(전라도 태생이 아니라서 대충~ 느낌으로 끼워 맞춤)
실물과 흡사하게 그려내고 싶은 마음과 마음 가는 대로 그리고 싶은 마음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그림은 마무리된다. 식물 본뜬 연필선을 지울까 하다가 그냥 둔다. 고마리는 8, 9월에 꽃이 핀다고 한다. 그때는 실물과 흡사하게 다시 그려보기로.
식물을 그리다 보니, 그 식물이 있던, 그곳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식물이 있는 곳에 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