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조카네 아파트 화단 주변을 돌다가 이준이와 함께 웅크리고 앉아서 보았던 '주름잎'. 우리 집 갯패랭이 화분 귀퉁이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이준이가 있는 거기, 내가 있는 여기. 똑같이 피어있는 '주름잎'이라 더 반가웠다. 거기서 보았더니 여기서도 보인다.
앙증맞은 연보랏빛 '주름잎'을 보고 있으니 팔자주름이 살짝 펴지는 듯도 했다.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일 그려야지.'
잠들기 전에도 주름잎을 떠올렸다. 꿀풀을 닮은 작디작은 연보랏빛 꽃송이. 하얀 꽃잎에는 마치 꽃의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듯 샛노란 작은 점들이 줄지어 있다. 줄기를 따라 내려가 보니 별모양 꽃받침 안에 연둣빛 씨앗이 보였다.
지금 피어 있는 이 아이도 곧 지겠구나.
아침을 먹고 종이를 챙겨 호다닥 주름잎을 향해 갔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갯패랭이 화분에 풀들이 옹기종기 자라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말끔했다. 갯패랭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바닥에 뽑힌 풀들이 얼기설기 뭉쳐있었다.
앗. 저기에 주름잎이...
부지런한 아빠가 풀을 맸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였다. 주름잎 그리기를 미룬 게 후회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검색을 해서 그려본다. 역시, 대상을 직접 보고 그릴 때와 다르다. 잎에 주름이 있어서 주름잎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처음엔 이 작고 귀여운 꽃에 주름잎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주름... 하니. 서연이 생각이 난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서연이를 만나 10개월 정도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였는데, 여름방학을 지나 오랜만에 만난 어느 날, 대뜸
"선생님 왜 이렇게 주름이 늘었어요?"
천진하게 묻는 것이 아닌가.
서연이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며 나를 아니, 내 주름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당황했다가 금세 울상을 지었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 모드로 해 놓고 내 얼굴을 보며 탄식했다.
"선생님... 주름.... 어떻게... 금방 할머니 되겠어. 주름 심하지?"
계속되는 하소연에 서연이가 못 참겠다는 듯 호통치듯 말했다.
"주름이 뭐 어때서요!"
서연이의 호통에 정신이 확 들었다.
"맞아! 주름이 뭐 어때서. 서연아! 한 번만 더 말해줄래?"
"주름이 뭐 어때서요!!"
주름 보란 듯 더욱 신나게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올해, 유난히도 옴팡 늙어버린 듯하다. (늙어버렸다,라고 단정해 쓰지 않은 건 너무 울적해지기 때문이다.) 빛 좋고 공기 좋은 선암사에서 찍은 셀카는 언제나 만족스러웠는데 몇 주 전 선암사에서 셀카를 수시로 찍었으나, 단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 사진 속 나는 이를 앙 다물고 있다. 주름 때문에 시원스레 입 벌리고 웃을 수도 없다. 예전엔 머리를 안 감았을 때 모자를 썼는데 이제는 주름이 유난히 도드라진 날 모자를 쓰게 된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이준이를 데리러 갔을 때도 안 하던 화장을 하고 모자까지 쓰고 나갔다. 이준이는 고모가 어떤 모습이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데 괜히 조카 앞에 있을 때 유독 더 나이 듦이 신경 쓰인다. 속히 말고 여유롭게 차근차근 늙어가면 좋겠다. 자기 전에 숟가락으로 얼굴 문지르기라도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아이크림을 바르면 주름이....
"주름이 뭐 어때서요요요요요!!!'
서연이의 호통이 거세게 메아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