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_여뀌와 고마리
으실으실. 살갗에 닿는 바람이 꽤 차다. 호수와 숲을 끼고 걸어서 더 쌀랑하게 느껴지나. 산책하는 사람들 옷차림도 지난 주와는 확연히 다르다. 긴팔이 훨씬 많다. 도서관에 그림을 제출한 뒤, 잠시 쌈지숲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날은 찬데 희한하게 낮잠이 미칠 듯이 쏟아진다. 눈이 감기고 정신이 몽롱하다. 그냥 집에 갈까. 아니지. 나대로 <식물 그리는 목요일>을 이어가기로 하지 않았나. 다음 주부터 해도... 아니지. 스스로 한 약속을 시작부터 어길 수는 없지 않나. 쌈지숲을 몇 발자국 올라가는 시늉만 해도 식물이 알아서 넝쿨째 굴러올 거야.
한 발, 두 발...
온다. 온다. 식물이. 아니, 잠이 온다.
졸린 눈, 흐릿한 시야에도 아랑곳 않고 굴러 들어온 식물이 있었으니...
"깨다!"
여뀌가 반갑다. 쌈지숲 초입만 들어서도 속속 돋아난 분홍색 꽃망울이 눈에 든다. 한 번 눈에 들어오면 여기저기서 쏙쏙 보이는 게 신기하다. 빤히 보이는데 숨고서는 '찾아보세요~' 노래하는 조카 같다. 여뀌는 소꿉놀이 하던 어린 시절로 타임머신을 태운다.
소꿉놀이를 통해 나오는 음식은 먹지 않을 뿐이지 꽤나 현실적이고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어렸어도 식물의 모양과 색을 최대한 활용해 요리에 썼다. 소꿉놀이는 여럿이 할 때도 있었고, 혼자 할 때도 있었다. 여럿이 하면 역할을 분담했다. 요리를 하고 대접하는 주인과 방문해서 요리를 먹는 손님으로 역할을 나눴다. 못 먹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척해야 하는 손님보다는 못 먹을 음식일지라도 만드는 주인 역할을 좋아했다. 혼자 소꿉놀이를 할 때면 금방 시시해졌다. 혼자 노는 데 서툴렀다.
여뀌는 깨로 통했다. 손으로 여뀌 꽃 알맹이 부분을 도로록 훑어내서 주로 국물이 있는 요리 위에 동동 띄워내곤 했다. 실제 깨는 누렇지만, 여뀌의 분홍 알갱이. 깨는 음식의 색감을 훨씬 더 살려냈다. 그땐 여뀌의 이름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깨라고만 부르고 놀이를 함께 했다. (지금은 식물 이름부터 검색하는데 말이다.)
여뀌 타임머신에서 내려 징검돌이 보이는 호수 가장자리로 왔다. 앗! 온통 고마리! 세상이다. 이리저리 다 고마리다. 고마리! 고마리! 떼창이 들린다. 지난주와 달리 먼 데서도 하양분홍 꽃(받침)이 일렁이는 게 눈에 확 들어온다. 와. 잠이 확 달아났다. 아니, 이건 꿈속 같다. 이 고마리 저 고마리 두루 살피며 바삐 눈을 굴린다. 누굴 그리지. 머릿속에서는 이미 가상의 도화지를 펼치고 스케치를 시작한다. 됐다 싶을 때까지 계속, 고마리와 눈 맞춘다. 마음속에는 환희가 차오른다.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음 주에도 이 모습 그대로 있어줄 거지? (엉? 나 고마리에게 매달리는 건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정신 차리자.
진정 고마리, 고마리 때문에 공들여 영상 찍고 수십 장 사진 찍고 이렇게까지 오두방정을 떤다고? 제정신인가. 나... 아무래도 고마리를 사랑하는 것 같아. 벌써 보고 싶어.
여뀌가 유년으로 돌아가게 해 준다면 고마리는 내 척박한 마음 밭에 어여쁜 사랑을 꽃피워낸다. 여뀌와 고마리는 닮은 데가 있다. 여뀌가 고마리의 빼빼 마른 버전이랄까. 여뀌도 잘 보면 잎 가운데 부분이 짙다 있다. 고마리도 잎에 짙은색 문양이 있다. 엄마에게 고마리를 보여주니 대번에 '매운대야.' 엄마 어릴 때 고마리를 '매운대'라고 불렀다 한다. 여뀌의 학명 'persicaria hydropiper'는 매운맛이 나는 식물이라는 의미인 'piper'가 들어있다. 맛이 매워서일까. 질경이나 우슬 잎은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데, 여뀌와 고마리 잎은 멀쩡한 게 많다. 고마리가 여뀌보다 더 매운맛인 듯. 둘 다 꽃으로 보이는 부분이 꽃받침이라고 한다. (믿기지는 않는다.)
조금 더 들여다보니 여뀌의 꽃(받침) 모양이 다닥다닥 붙은 쪼만한 복숭아 같다면 고마리는 갓 지은 투명한 밥알 같다. 고마리 몇 송이 따다 밥그릇에 수북이 담아두면 얼마나 맛있게요. 멋지겠다.
어릴 때 나는 혼자에 서툴렀다. 친구가 와주기를 기다렸다. 먼저 말 걸어주기를 속으로 빌었다. 커서는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이었으나 언젠가부터 밖에 나서기만 해도 반려동물, 커플, 친구들과 함께인 혼자가 아닌 사람들이 보였다. 쓸쓸하고 적적했다. 걸었다. 풀이나 꽃, 나무와 흙, 새와 돌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을 맞추고 고여있던 혼잣말을 털어놓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라고 묻는다면 방법은 잘 모르겠다. 그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실물을 따라갈 수 없는 솜씨 부족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함께인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즐거운 마음을 계속 따라가며 표현하고 싶다. 식물은 언제나 밖에 있고 걸어 나가야 만날 수 있다. 오늘도 덕분에 좀 더 걷는다. 고맙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