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되고 싶은 날
저녁에 도착하기로 한 동생네 가족에게 맛있는 커피와 쿠키를 내놓고 싶어서 버스를 탔다. 오랜만의 외출같다. 카페 두 군데에 들러 원두와 쿠키, 드립백을 샀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날씨가 아까웠다. 봄에 가까운 포근하고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걸었다.
동천변을 따라 무심히 걸었다. 오가는 새들을 보니 살짝씩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 무리 반짝이는 물결이 나를 따라오는 듯했다. 윤슬은 생겨남과 동시에 사라졌다가 다시 생겼다. 찰나의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이어져 어느 것이 생성이고 어느 것이 소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반짝임. 물결의 빛나는 움직임을 옆에 두고 찬찬히 걸었다.
어.
여기서 아는 이를 만날 줄은 몰랐다. 눈앞의 그녀가 실감 나지 않았다.
어떻게 지내요?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는 좀 어떠세요?
그 질문에는 눈물이 와락 쏟아진다.
"같이 좀 걸을까요?"
나는 그 질문에만 망설임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동천을 따라 걸으면서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힘들고 아픈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힘들 땐, 숨이 들고 나는 것만 신경 써봐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예요."
그녀는 재작년에 부정맥 진단을 받았다 했다. 그 후로 편안하게 숨 쉬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며 나에게 간곡한 눈빛으로 당부했다.
"많이 외롭겠어요."
그녀는 내 두 눈을 보고 말했다.
"네. 외롭네요.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도..."
"물 보면서 감정을 흘려보내는 것도 좋은데 때론 더 슬퍼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산은 정말 품어줘요.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산에도 한 번 가봐요."
"집 근처에 뒷산이 있는데, 가볼게요."
"입꼬리를 이렇게 손으로라도 올려요. 웃어요. 우리. 벚꽃을 기다려요."
우리는 40분 여 걷다가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나는 두 팔을 벌렸다. 우리는 포옹을 하며 서로의 등을 살뜰히 쓸어주었다.
집에 들어와 거울을 보니 눈이 좀 부어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녀의 얼굴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건드면 툭. 나는 손으로 입꼬리를 올려 스마일 했다. 실컷 울고 개운해진 얼굴로 보인다. 그녀를 만난 이후, 외로웠다가, 외로움이 훨훨 날아가는 그림책 '새가 되고 싶은 날'이 떠올랐다.
새가 되고 싶은 날 / 인드리드 샤베르 글/ 라울 니에토 구리디 그림/ 김현균 옮김/ 비룡소
"학교에 간 첫날, 난 사랑에 빠졌어요."
주인공 '나'는 같은 반 친구 '칸델라'를 늘 바라본다. 하지만, 칸델라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늘 새만 바라본다. 좋아하던 자동차도 축구공도 따분해진 어느 날, '나'는 새가 되기로 결심한다. 깃털 옷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나'는 모든 불편과 위험, 친구들의 시선을 기꺼이 감수한다. 드디어 처음으로 칸델라와 마주 보게 된 나. 칸델라는 (낡고, 개털 냄새나는) 깃털 옷을 벗기고 '나'를 꼭 안아준다.
새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의 칸델라. 그런 칸델라를 향한 '나'의 진심 어린 애틋한 마음. '나'와 '칸델라'가 포옹하는 마지막 장면은 뭉클하다. 외로울 때 이 장면이 위로가 된다.
"고모, 오늘은 무슨 책 읽어줄 거예요?"
이준이에게 '새가 되고 싶은 날'을 읽어주었다. 수다쟁이 이준이는 아무 말 없이 차분하게 그림책을 본다. 폭설이 예보되어 있어서 동생네는 하룻밤만 자고 용인으로 올라갔다. 떠나는 날 저녁, 조카 이준이는 다다다 잰걸음으로 다가와 나를 폭 안는다. 안기면서 안아준다. 동시에.
"고모를 너무나 사랑해요."
"너무나 사랑해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동천, 그녀를 우연히 만난 이후, 뒷산을 좀 더 자주 바라본다. (아직 걸음을 떼지는 못했다.) 무기력해질 때는 숨을 바라본다. (다행히 숨이 들고나는 것은 누워서도 집중할 수 있다.) 열흘만에 다시 무언가 쓰고 싶어졌다. 그날 보았던 오리의 다홍 오리발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눈에 아른댄다. 그녀와 함께 걷던 길을 홀로 걸어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당분간은) 움직임은 용기다.
조카에게 요즘 제일 좋아하는 로보트 태권 브이를 그려서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