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류재화 옮김, 문학과 지성사
커피를 참는 데 하루를 다 보냈다. 참고 참느라 기진맥진. 카페라도 들어가면 홀린 듯 커피를 주문하게 될까 봐 도서관에 눌러앉아 있었다. 덕분에 반납하려고 가져갔던 파스칼 키냐르의 '세상의 모든 아침'을 한 번 더 보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데 눈물이 난다. 커피 참길 잘했다.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류재화 번역가의 말과 문장이 궁금해서 빌린 책이다. 출판사 '난다'의 [모호]의 시리즈 중 필리프 자코테의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을 옮긴 류재화 번역가의 인스타 라방을 보게 되었다.
그녀 말이 곧 그녀 자체. 고유한 언어. 말과 언어의 경계가 모호. 그녀는 자신의 언어를 스스로 동시 번역해 듣는 이에게 말로 닿는 신묘한 화법. 뉘앙스로 알게 되는 미지의 텍스트. 뿅 반했다. 추상적이고 휘발되어 버리는 말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나의 내면을 두드렸다. 어떤 책들을 번역했는지 목록을 훑어보았다. 의외로 곤충 시리즈 그림책도 있다.
파스칼 키냐르. 이름만으로도 지레 겁을 집어 먹는다. 파스칼 키냐르의 '심연들', '옛날에 관하여'는 읽었다. 사색적인 문장에 매료되었지만 한 페이지 넘어가기 쉽지 않았다. 자신만의 내면세계가 견고하게 구축된 대단한 작가라는 건 알겠으나 더 읽어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1650년 봄, 생트 콜롱브 부인이 죽었다."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의 첫 문장이다. 그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고, 아내의 죽음이 사무쳐 <회환의 무덤>을 작곡한다. 몇 년간 두 딸과 함께 평화 속에서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며 음악을 위해 살던 그는 강물을 바라보며 몽상에 잠긴다.
몽상에서 빠져나오자 어느 날 밤 아내가 죽음과 조우하기 위해 그를 떠났을 때 작곡한 <회환의 무덤>이 기억났다.
(34p)
<죽음과 조우하기 위해 그를 떠났을 때> 이 문장을 조우하려고 책이 와 주었구나. 거동이 힘겨운 엄마에게 죽음이 바짝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무섭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죄책감만 늘어간다. 빛을 잃어간다. 소설 속 문장에 엄마를 대입해 보면, 엄마가 죽음과 조우하기 위해 떠난다는 문장은 죽음에 삼켜지지 않고, 죽음과 함께 엄마가 당당하게 있는 느낌. 죽음과의 조우가 끝나면 다시 올 것 같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집에만 계셨는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어디에나 있어."
아버지 장례를 마친 친구의 말은 내게 깊이 각인되었다. 친구의 말이 가끔 무심코 흘러나오는 노래처럼 들려온다.
-
눈물 흘리며 곡을 연주한 뒤 처음으로 죽은 아내의 모습을 본다. 죽은 아내는 남편 생트 콜롱브를 여러 번 찾아온다. 작가는 왜, 아내가 찾아오는 장면을 꿈이나 환시가 아닌 실제처럼 그려냈을까. 죽은 자가 어떻게 산자와 대화를 나누고 눈물을 흘리며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단 말인가.
생과 사.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가능한 이야기지 않을까. 혼재. 경계 없음. 어쩌면 아내가 죽은 이후, 생트 콜롱브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이탈해 사무치게 그리운 아내의 세계로 이행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서 그는 살아갈 수 없지 않았을까.
"선생님, 전부터 여쭙고 싶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
"왜 연주하시는 작품을 출판하지 않습니까?"
"아,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작곡을 하지 않네. 난 절대 악보를 쓰지 않아. 내가 가끔 하나의 이름과 기쁨을 추억하며 지어내는 것은 물, 물풀, 쑥, 살아 있는 작은 송충이 같은 헌물일세."
"선생님의 물풀, 송충이 안에 음악이 어디 있는데요?"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75p)
범상치 않다. 곡을 창작하는 이유가 자신의 운명을 완성하는 것이라니. 작품을 발표하며 타인과 소통하고 싶은 열망은 그에게 부재한다. 다만, 자신의 할 일로 운명을 완성하는 것이 연주의 이유다. 고로 그의 삶은 거추장스럽지 않다.
비올라 다 감바로 맺어진 스승과 제자. 가치관의 차이로 스승을 떠나 궁정 음악가로 활약하던 제자는 죽음을 앞둔 스승을 찾아온다. 두 인물이 함께 연주하는 [눈물들]. 그들의 연주에 감동받은 관객처럼 눈물이 차오른다. 폐허 같던 마음에 아름다운 음률이 뒤섞인다.
비올라 다 감바의 선율이 올라가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천장을 뚫고 들어온 빛이 오두막 안에 퍼졌고 그 빛은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눈물이 코에, 뺨에, 입술에 천천히 흘러내릴 때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마레 씨가 돌아간 것은 새벽녘이 되어서였다. (122p)
-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은 감동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일까. 연관성이 느껴지는 꿈을 꿨다. 나는 몸과 마음의 치료를 받기 위해 한의원에 들어갔다. 나를 진료실로 안내하는 매니저 태양 님. 문을 열면 한의사가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주 커다란 검정 그랜드 피아노. 당황해서 두리번거리는 내게 피아노 선생님(한의사)이 다가왔다. 뭐든 좋으니 아무거나 연주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주저하다가 속으로 계이름을 외며 오른손으로 더듬더듬 피아노 건반을 짚었다. 짧은 동요였는데도 잘하지 못해서 중간에 피아노 치기를 멈추었다. 피아노 선생님은 괜찮다며 웃어 보인다. 그 미소 때문이었을까. 용기가 생긴 나는 내키는 대로 양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짚으며 뚱땅댔다. 피아노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덩달아 경쾌해졌다.
친구가 피아노 칠 차례가 되자, 바짝 긴장하는 나. 저 친구가 잘 치면 어쩌지 싶은 마음으로 초조해하자 내 비좁은 마음을 눈치챈 선생님은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다. 놀랍게도 부정적인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 나는 괜찮아졌다.
-
잠결에 아빠가 사과 깎는 기척이 들린다. 수면양말을 껴신고, 엎드려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다. 오늘은 콩나물국이다. 점심엔 냉동실에 있는 잡채를 볶아야지.
지리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저 그런 일상이지만 소중히 다루고 싶은 마음? 이렇게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더 하찮아질까 두려운 마음? 단지 쓸 수 있는 걸 쓰는 중? 뭔지 잘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