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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r 04. 2024

나의 손

수어

손을 쓰기에 앞서 미리 손쓰기  


  이번엔 내가 제시어를 말할 차례지. 미리 정해 두었던 손을 꺼냈어. 왜 손이었냐면, 손에 관해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손으로 무엇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해서 손이었음. 지금 이 순간에도 손을 쓰고 있잖아. 


  나는 타인을 처음 만나면 눈보다 손에  눈이 가. 어릴 때부터 나의 손은 놀림과 놀람의 대상이었어. 특히 연체동물을 연상시키는 새끼손가락. (그래서 내가 연체동물을 유독 좋아하나) 내 새끼 손가락을 만져 본 친구들은 "어머! 뼈가 없는 거 같아. 이럴 수가." 흠칫 놀라거나 무서워하기도 해. 어릴 땐 지나치게 흐물텅한 손이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재미있어. 몸은 굳어 가는데 손만은 여전히 연체동물이야.  


  손이 좋아. 나를 만질 수 있고, 타인을 만질 수 있잖아. 타인의 손을 잡고 걷는 일은 정겨워. 가만 생각해 보면 모든 순간에 손이 있어. 손을 남다르게 보았던 순간을 기억해. 


  태백 살았을 때, 중학생 정도 되었으려나. 엄마가 부업으로 마늘 까는 일을 했었거든. 그때, 마늘이 잠기도록 물을 부어놓고 껍질을 불린 다음 마늘을 까는데, 까도 까도 끝이 없는 거야. 손가락은 간지럽고 퉁퉁 불고. 그런데도 엄마는 묵묵해. 내가 한숨 쉬며 “저. 많은 마늘을 언제 다 까.” 툴툴대니 엄마는 “눈이 아니라 손이 다 해.”라고 답했어. 그때, 처음으로 손을 달리 보게 되었어. 눈으로는 못 할 것 같다 겁먹는 일도 묵묵히 해내는 손. 


  네 작업은 손의 공력이 많이 드는 일이잖아. 바늘을 잡고, 종이를 오리고, 물들이고, 붙이고. 그 많은 일을 너의 두 손이 계속한다는 게 놀랍지 않니.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너의 손맛! 네 남편과의 인연도 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봐도 되지 않을까. 


  사실, 엄마와 아빠 손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엄두가 좀 안 나서 돌아가려고. 전에 써두었던 시를 한 편 꺼내보았어. 거저먹는 느낌이라 반칙 같기도 하지만, 봐주라. 


  사사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나 자신과 약속한 한 가지가 있다면, 일주일 동안 제시어에 대해 성실하게 고민하고 쓰는 일이었어. 꼬박꼬박 쓰기. 아직은 마음처럼 잘 안 되지만, 서서히 되어가게 해 볼게. 나 자신을 손 좀 볼게. 


수어 



손놀림이 구름이시네요 

멀리서도 구름을 부르는 줄 알겠습니다


손이 둥실 떠오르고 휘휘 

구름을 몰아오느라 바쁘네요 


구름은 누구에게나 흘러오는 

공평한 무음의 음악


텅 빈 의자가 

무엇으로 가득한가 했더니 


구름을 듣는 중


구름 방향으로 놓아주세요 

의자의 본래 용도는 구름 


구름 없는 날에도 뜬 구름 

구름의 단면은 무릎담요 

구름은 걷기의 예고편


골목 가득 구름을 풀어놓을게 

널 홀려 불러낼게 

구름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는 못 배기 걸 


구름을 사랑하는 힘은 누구에게나 있는 초능력 


걷기의 예고편엔 혼자였으니 

본편에는 너와 출연하고 싶어 


손짓만으로 

너의 뒤꿈치를 웃겨 줄게 


  가끔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늦은 저녁시간, 지하철 안 대부분의 사람은 휴대폰 중. 지쳐있다. 사람들은 영상을 보거나 잠에 빠져있거나 혹은 자는 척을 한다. 그 틈에 격렬하리 만큼 팔딱이는 생명체. 둘은 지하철 옆 자리도 아니고 맞은편에 앉아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지극히 고요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은 두 사람은 농인이었다. 그들이 불편할까 봐 조심조심 보았다. 나의 걱정은 무용했다. 그곳에는 그들 둘만 있었고, 둘의 세계만 존재했다. 둘의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들의 자유로운 손짓, 표정, 침묵의 대화가 부러웠고, 그들 손짓 너머의 세계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구름을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한 아름다운 말의 무늬였다. 둘의 수어가 자꾸만 내 마음속으로 흘러들었다. 나도 손의 대화에 끼고 싶었다. 알아듣기라도 했으면... 아니 알아보기라도 했으면...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갈 때면 내가 뱉은 무수한 말 때문에 피로감을 느끼곤 했다. 손을 움직여하는 말은 어떨까. 손이 피곤해지면 알아서 말을 멈추지 않을까. 실제로 손을 보면서 말을 하면 할 말 안 할 말 분간하며 신중해지지 않을까. 하나마나한 불필요한 말이 아니라 손이 필요한 말을 선별하지 않을까. 질문이 계속 떠올랐고 수어에 관심이 생겼다. 


  '미라클 벨리에'라는 코다*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울며 감동을 받았다. 손이 보여주는 언어, 감정, 움직임은 아름다웠다. 손의 궤적이 노래를 부르는데 손이 추는 춤이었다. 손이 다른 세계로 향하는 길을 보여주는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손과 표정이 생생했다. 팔딱였다. 


  그럼에도 잊었다. 잊은 채 살았다. 손이 주는 생생함을. 아기처럼 아무것도 쥐지 않은 빈 손에서 말이 탄생하는 순간, 언어를 더듬더듬 천천히 만지면서 옹알옹알 빚어내면 어떨까. 말 걸고 싶은 사람에게 손부터 내밀어 볼래. 



*코다 :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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