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16
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16 _ 어떤 시절 속에 있든, 우리는
+10월 31일 급성 늑막염과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어제 퇴원했어요.
치료 받는터라
일주일간 편지를 보내지 못했네요.
이제 괜찮아져서 자리에 돌아오니
이 일상이 무척이나 반갑고 귀합니다.
모두 건강한 날들 보내시길 바라요!
**
나는 달빛 아래서 그 창백한 이마,
그 감긴 눈,
바람에 흩날리는 그 머리칼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했다.
내가 여기 보고 있는 것은 껍질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_<어린왕자> p.107
창밖으로 유순한 아침이 밝아옵니다.
어디선가 날아온 새 한 마리가
넓은 날개를 펼치고 유유히 날아다니면서
잠든 바람을 깨우고 있어요.
새가 어른거릴 때마다 빛이 부서지고
부서진 빛이 창틀에 내려앉는 걸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결 편안한 아침이에요.
자주 펼치지만 어느 구석 하나도 낡지 않는 것이 있죠.
'나답게 나아겠습니다'라는 문장 같은 것 :)
나 자신을 아는 것, 나를 돌보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은
이미 팽팽하게 가득한 목소리들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생각해요.
나를 안다는 것, 그리고 나답게 나아간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고요한 물음표를 덧붙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 저마다의 수많은 답들이 있겠죠.
그리고 그러하기에,
'나만의 답'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요.
누군가의 경험 안에서 길어낸 누군가의 답이 아니라
나의 삶 안에서
나만이 깨달아 발견할 수 있는 나만의 답.
그리고 이것은 나를 아는 것과 더불어
나를 둘러싼 세상을 알아가는 것과 다름 아닐테죠.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면서
내가 취할 것과 취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판단하는 것들.
이 생각들이 쌓였을 때
하루치 일상 안에 내가 내딛는 많은 발걸음들이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알고, 나를 둘러싼 외부를 알면
우왕좌왕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듯이요.
나는 고정되어 있는 사물이 아니라서
매 순간 순간 달라지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알아차려야 하는 것 같아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니까,
어제 들여다 본 나와 오늘 발견하게 될 내가 달라지죠.
요즘 저는, 이런 나를 알아가고 있어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 오래도록 천천히 짐을 싸는 나.
시간을 재촉하곤 했는데
가만히 바라보니까 제가,
결국 멀리 가려고 짐쌀 시간이 많이 필요한 셈이더라구요.
여러분도 이런 시절이 있으셨나요?
며칠 전에 창가를 지키는 초록 식물들의 늘어진 잎이
유독 힘이 없어 보여서 화분에 물을 주었어요.
흙 위로 떨어진 물줄기가
고일 틈도 없이 스미고,
바사사삭한 소리까지 들리는 걸 보니
흙이 제법 말라있었나봐요.
내가 물주기에 소홀했던가?
식물들의 솔직함이 참 좋을 때가 있어요.
인간들은 참 많은 것들을 숨기곤 하잖아요.
더불어 숨겨야 살아지는 순간까지도 감내해야 하고.
식물들처럼 우리들도
지쳤을 때 마음껏 팔을 늘어뜨릴 수 있다면,
발걸음의 속도가 한 없이 늦어져도 좋다면,
마음에 물이 넘칠 때
초록잎 끝에 둥근 물방울 툭툭 떨어지듯
내 눈에도 그 물방울 맺힐 수 있다면,
촉촉해진 흙과 창을 지나 들어오는 볕으로 충만해진 잎들이
곧추선 채 활짝 펼쳐지듯,
그렇게 온몸으로 즐거움을 표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매 순간 절실하게 솔직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실까요? :)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좋다'는 칭찬 때문이 아니라
그 건강한 솔직함 때문에 기뻐져요.
당연한 건 없으니까요.
당연히 좋은 것도 없고, 당연히 솔직한 것도 없고
모든 것은 작고작은 정성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들.
창가를 지키는 식물들은 이제 이내 허리를 펴고,
잎을 펼쳐낼 것입니다.
급한 갈증을 해소한 기쁨으로 해바라기를 하겠지요.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를 채우다가
문득, 마침표를 찍고 편지를 보내고 싶어요.
오래도록 지금처럼.
어떤 시절 속에 있든
오늘도 내일도
나답게 나아가는 날들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담아서요.
**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__<쇼펜하우어 아포리즘> p.107
오늘도 나답게 나아가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리추얼 필사, 글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