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너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씨 Nov 18. 2023

너에게_사랑의 종류는 셀 수 없어

2023 11 18 토

너에게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명명할 수 없었기에 괴로웠지.

우리 사이의 기쁨이 지나간 뒤 우리는 우리를 정의할 

마음의 카테고리를 찾아 헤맸어.

우리는 둘 다 찾을 수 없었지.


그 후로

수십 년이 흐르고

너를 닫아두었던 상자를 열고

나는 다시 너를 가볍게 명명해 버리려 했지.


우정과 더 깊은 우정.

사랑과 몹시 닮은 우정.

왜 그랬어야 할까.

여전히 두려워서?


우리의 우정은 명명될 필요 없는 거였는데.

언제나 너 자신이었던 너에 비해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이기가 어려워.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시간은 많지 않아.

그래서 말해.

나는 네가 무엇이었든 

우리의 우정이 무엇이었든

내가 가장 안식하고 싶었던 장소가 너였다고.


나는 너의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아.

그건 네가 명확할 때도 그랬어.

네가 옆에 있을 때도 너와 걸을 때도

네가 나를 빤히 보고 있을 때도

너의 까만 눈동자만 기억해.

가끔 그런 까만 눈동자를 만나곤 해.

어린애의 눈동자 속에서

강아지의 눈동자 속에서

우연히 구해준 어린 새의 눈동자에서.

마치 그들의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야.


너를 기억할 수 없어.

네가 무엇이었든 나는 네 영혼의 아우라만 기억해.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식이야.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닌데 내가 사람을 기억 못 해.

어떤 외형도 잘 묘사하지 못해.

그림 그리는 사람이 맞나 싶게 그게 안 돼.


이제 우리는 그때의 우리가 아니지.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지.

너를 길에서 스쳐가도 서로를 알 수 없게 된 지 오래지.

너 역시 나를 알아볼 수 없을 테고...


그러나 너를 만나 지긋이 네 눈동자를 바라보면 나는 알 수 있을 거야.

너라는 우주. 내가 들어가 본 깜깜하고 신비했던 타인이라는 첫 우주.

너의 눈동자 속에 있던 너의 우주는 여전히 거기 있을 테니까.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을 잊으려 해 온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두고 싶어.

그게 네가 받을 수 없는 편지가 되더라도 용서해 줘.

언제나 이기적으로 구는 나를 네가 비웃지 않을 거라 믿어.

(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나는 왜 이런 사람인건지... u_u;;;)


가을이 깊어가.

매 순간 다정한 날들 보내길.


2023 11 18 토요일


너의 지현

 


매거진의 이전글 너에게_The Velveteen Rabbi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