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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핑크리본을 따라

by 일상 여행자

“블루베리 익은 거 없어요?”

아침 샐러드의 화룡점정을 찍을 고명으로 몇 알 올려 보려고 이즈음이 제철인 블루베리를 수소문했다. 화단 곁에서 알맹이가 맺혀가던 블루베리 맛을 본 새들이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따먹으려 달려드는 걸 본 게 며칠 전이었다. 식탁에서 밥술을 뜨다 말고 달려 나가 내쫓던 아버지의 고함도 들었으니 먹을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정작 익을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난 블루베리의 임자는 따로 있었다. 서울 애들이 내려와서 직접 따는 그때까지 그물망으로 단단히 싸매놓을 참이시란다. 완전무장시켜 쪼아대는 새들로부터 엄중히 지키겠다는 아버지의 블루베리의 접근금지령은 새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닌 건 같았다. 조카들 이외의 모두로부터 블루베리를 지키겠다는 그 결연함에 떨떠름해졌다. 따먹겠다는 생각은 고사하고 나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직 맛있는 자두는 나무에서 내려오지도 못했을걸”이라고 덧붙이는 엄마의 기다림도 못지않게 애틋하다. 애들이 내려오기 일주일 전부터 엄마의 하루는 종종거림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오이소박이와 깍두기 등의 김치를 담그기 시작하더니 땅콩조림, 깻잎절임, 멸치볶음까지 새로운 밑반찬들을 뚝딱뚝딱 쌓으셨다. 도착 전날 밤에는 손님맞이에서 빼놓지 않는 디저트인 식혜를 펄펄 끓이고 계셨다.


아버지 생신에 맞춰 4년 만에 다시 만나는 조카였다. 막 걸음마를 떼던 돌배기 때 잠깐 안아보고 훌쩍 자라 어느덧 다섯 살 얼굴이 되어 마주하게 되는 만남이었다. 아우가 간간이 보내주는 토막사진들로 아이들의 성장을 멀찍이서 바라보긴 했다. 그러나 어린 조카와의 대면은 단편영화의 필름 조각처럼 겨우 명맥만 이어져 왔고, 그나마 주말의 영상통화로 잠깐씩 얼굴을 트던 게 최근이었다. 자연히 서먹하고 낯선 상봉이면 어쩌나, 말할 수 없는 걱정이 조심스레 자리해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순수함은 어른들의 복잡한 마음을 단숨에 풀어버렸다. 코로나 팬데믹과 긴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난 조카는 낯가림은커녕 스스럼이 없었다. 모두의 우려를 말끔히 깨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버금갈 정도로 극적인 재회를 만들어 내었다.


“할아버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두 조카는 긴 공백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아버지와 엄마 품에 폭 들어가 안겼다. 반가움을 온몸으로 내뿜고 연신 자지러지는 웃음을 쏟아내며 어른들 혼을 쏙 빼놓았다. 왁자한 저녁 식사 내내 아버지와 엄마의 눈길은 조카들의 얼굴에서 잠시도 떠나지 못했다. 그동안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한꺼번에 담아보려는 듯 아이들의 웃음 가득 담긴 눈과 입매가 지어내는 표정과 함께 덩달아 미소 짓고 계셨다.

“47, 48?”

“아니요, 44, 78!”

“무슨 사이즈도 아니고.”

이틀 상간인 아버지와 막내의 합동 생일케이크가 올려졌다. 둘째 조카가 직접 골랐다는 케이크에 큰 조카가 맞춰온 아버지와 막내 나이만큼 숫자의 초가 꽂혔다. 노래와 박수, 폭죽이 터지는 축하 한마당이 펼쳐지다가 촛불이 꺼지고 일시에 잠잠해졌다. 생일축하 의례에 따라 꺼진 초들을 걷어내고 아버지는 케이크 칼을 들고 기다리셨다.

“언니가 저기 잡아, 내가 요기를 잡을 테니까.”

두 아이가 케이크 앞으로 바짝 다가와 앉았다. 케이크를 둘러싸고 있는 리본의 끝자락을 하나씩 나눠 잡았다. 과일 몇 조각만 얹었을 뿐인 밋밋한 생크림 케이크였다. 단순한 모양의 새하얀 케이크를 살려주는 건 화사한 빛깔의 핑크리본이었다. 혹여 케이크가 망가질까 봐 조카들이 리본 양쪽 끝을 조심스레 잡고 살살 당겼다.

그 순간 동안 식구들 모두 숨을 죽이고 함께 리본을 풀고 있었다. 자그마한 두 손이 리듬을 척척 맞춰가며 조금씩 매듭을 풀어나갈 때마다 마음이 차올랐다. 그동안 두 가족 사이에 얽힌 오해가 느슨해지는 리본처럼 서서히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대신 핑크빛 설렘과 새로운 희망이 조금씩 들어섰다.

조각조각 나눈 케이크를 입 주변에 잔뜩 발라가며 먹는 두 조카는 영락없는 천진난만이었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함이 꽃다발 같은 케이크처럼 가족 품에 안겨졌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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