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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너 Feb 16. 2022

파레이돌리아_05

단편소설

위기를 맞이한 아버지의 돌파구는 분명했다. 사람들에게 이 곳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형교회나 피아노 학원이 있는 언덕 아래 동네에는 상점들도 많았고 변화도 빨랐다. 언덕 꼭대기는 그렇지 않았다. 야채를 싣고 팔러 돌아다니는 트럭 조차 올라오지 않는 곳이었고, 칼 갈아요나 개 삽니다, 개 파슈라는 음성을 틀어놓고 돌아다니는 아저씨 정도나 이따금 나타나는 정도였다. 한 번은 영덕게를 파는 트럭이 우리 교회 앞까지 올라와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게를 사다가 요리해 먹을 만한 집이 없어 보이는 동네에 와서 그러고 있는게 의아해서 물어봤더니 언덕 아래에서 장사를 하다가 그 일대 터줏대감인 트럭 장사꾼들에게 혼나서 쫓겨온 것이라고 했다. 장사가 처음이었던 그 아저씨는 운전석에 앉아 미아가 된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교회의 문을 연 몇 년 동안 그처럼 패배감 어린 풍경을 수도 없이 보아왔을 것이다. 고개를 떨군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불안감에 이를 갈았을지도 모른다. 교회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와 잠을 청하는 노숙자를 쫓아내는 일이나 그 곳이 교회인지 모르는 동네 꼬마들이 흰 칠이 되어 있는 교회 입구 계단에 해놓은 색깔 낙서를 지우는 일, 종교 단체라 하면 적선에 의무적일 거라 생각한 시정잡배들이 문을 두드리며 지존파와 아는 사이인데 잠깐 사정이 어려우니 돈이나 좀 꿔달라는 협박에 시달리는 일 따위에도 지칠대로 지쳐가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느 날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교회의 첨탑을 그 보다 세 배는 높고 너비도 두 배 이상 거대한 것으로 교체하기로 마음 먹으셨다.



첨탑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동네나 빌라의 규모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앞 집에는 성질이 고약하고 드센 노부부가 살았는데, 종교가 달랐던 그 부부는 대놓고 교회의 바뀐 첨탑을 욕했다. 첨탑이 하늘을 다 가려서 한낮에도 집 안이 어둡다거나, 저 뿔같이 솟은게 너무 거대해서 밥 먹은 게 자꾸 얹히는 바람에 가슴이 답답하다는 소리를 해댔다. 아버지는 그런 앞 집 사람들의 불평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통장인지 반장인지를 역임하고 있었던 그 노부부 더러 대한민국 어디에 데려다놔고 사기 쳐서 살아남을 양반들이라고 적대감을 내비치셨다. 밤마다 창문 너머에서 나를 노려보는 강보의 귀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정확히 그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정도 첨탑을 청소하는데 나를 데리고 가셨다. 첨탑은 옥상에 설치된 구조물 위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그 곳까지 가려면 사다리를 이용해야 했고, 공간이 좁아 제법 아찔하고 위험한 곳이었다. 그래도 걸레를 한 손에 들고 아버지를 따라 사다리를 올라갔다. 벌벌 떨면서도 첨탑에 양각으로 붙은 교회 글자를 꼼꼼하게 닦아야 했다. 그래야 이 가정이 침몰은 일은 면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고, 나를 노리는 귀신에게도 잡아 먹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첨탑이 있는 구조물 위 공간에 올라서면 언덕 꼭대기 부근의 동네들이 한 눈에 보였다. 귀신이 나타나는 그 골목도 뚜렷하게 보였다. 학교 담벼락으로 막힌 막다른 골목의 음산하고 고부라진 길바닥도 훤히 살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조용한 산동네 골목길 같아 보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 나를 무섭게 하고 자꾸 괴롭히는 귀신이 그 곳에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을. 첨탑 곁에서 벌벌 떨며 골목을 살피고 있는 내 모습을 그도 보고 있을 것임을. 나는 그렇게 희끄무레한 존재에게 시종일관 내 안의 두려움을 들키는 중이었다.



- 너 맨날 같이 노는 친구놈 있지? 걔도 교회 좀 나오라고 해라. 다른 애들도 데려오면 더 좋고.



아버지는 넋을 잃고 있는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정근이는 부탁을 한다고 교회에 나올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단팥빵이나 크림빵을 권유해도 쳐다보지 않을 것이고, 삼손의 두 눈이 뽑힌 이야기를 해도 겁먹지 않을 것이며, 그저 공을 던지고 남녀가 은밀하게 비비는 이야기를 나누면 즐거울 아이, 때로 나를 업수이 여기며 긴 다리로 언덕을 내리 질주하는 그런 남자애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찾아오는 곤혹과 열패감에 나는 그저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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