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다,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아 졌다. 아무것이나 쓰고 싶지만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아 졌다. 아무것이나 쓰면 내 욕구가 충족될까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강박을 받아왔다. 그러기에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의 본질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았다. 먼저 원점으로 돌아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를 생각했다.
나는 정녕 무엇을 쓰고 싶은 것인가?
아, 문득 차가운 바람이 흩날리던 겨울, 도쿄에서 처음 만난 그녀와 나누었던 뜨거운 이야기에 대해 쓰고 싶다.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눈앞에 보인 카페에서 맛없는 커피와 토스트를 먹고, 우연히 거대한 신주쿠 역에서 지나간 100퍼센트의 여자를 내 인생에 대단한 부분이라도 되는 것 마냥 기록하고 싶은 것인가? 그녀는 내게 정말 100퍼센트였는가? 나는 그녀에 대해 무엇을 남기고 싶은 것인가?
아, 어쩌면 전시회장에서 만난 웅장한 바위 같은 것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야기를 적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전시회장에서 웅장한 바위를 보며 감탄하고 있다. 그 바위는 오묘한 색감이 아주 아름다웠다. 가까이서 그 바위를 보고 있던 중 갑자기 그 바위는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바위는 내게 제발 들키지 않게 자기 옆에 서서 이야기를 들으라고 부탁했다. 나는 슬금슬금 바위 옆으로 가서 무슨 일인데? 하고 속삭였다. 그 바위는 눈을 살짝 내 쪽으로 돌리더니 제발 부탁인데 자기를 여기서 빼내달라고 이야기했다. 바위에 반사되는 LED등의 하얀 빛은 눈물을 연상케 했다. 사실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돌덩이일 뿐인데 색감이 이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의미 없이 여기 몇 년 간 갇혀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답을 해준 건 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수백 년 간 불어오는 바람과 비를 맞으며 살아왔던 바위에게 전시장 에어컨 바람은 너무나 지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돌을 들기란 절대 불가능이었고, 옮긴다고 해도 바위를 어떤 식으로 옮겼다가는 나는 범죄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DO NOT TOUCH'라는 전시장 규칙 때문에 너를 옮겨줄 수 없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화가 난 돌덩어리는 입을 옆으로 돌린 채 나에게만 들리게끔 욕을 퍼부었다. 동시에 내 옆에 있는 억만장자들은 저 바위가 맘에 든다며 자기 집으로 옮기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했다. 다시금 바위의 색감이 돋보였고, 바위의 목소리는 전시회장 공기 사이로 자연스레 사라져 갔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새끼 때부터 피아노 음악을 듣고 자란 돼지가 있다. 돼지 농장 근처에 살고 있던 7살짜리 여자아이는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 모차르트, 쇼팽, 바흐 등 클래식 음악도 빼놓지 않고 칠 줄 알았고, 요즘 나오는 대중음악도 전부 연주할 수 있었다. 피아노는 농장 근처에 있어 이따금 피아노를 자주 연주하고는 했는데 이런 음악을 계속해서 들어온 돼지가 있다면 이 돼지는 피아노를 들으며 형성된 감성적인 성격 덕분에 본인의 생각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 고기 자체도 부드러워지고 육즙도 뛰어나게 될까? 아니, 어쩌면 별 수 없이 생겨난 감성적인 성격 때문에 매일 우리에 누워 모차르트만 듣고 움직이지 않아 근육이 없어져 맛없는 고기가 되었을까? 별생각 없이 평화롭게 모차르트를 듣던 돼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도살장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고 여자 아이는 남아있는 돼지들에게 피아노를 다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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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다시 아무것이나 쓰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