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이런 걸 원하신 건 아니죠?
입학식을 며칠 앞두고 여원이 어머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새로이 입학한 기관, 또는 진급한 학급에 혹시나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밥은 잘 먹으려나.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까. 여러 걱정이 앞서신 부모님들이 간혹 유치원에 찾아오기도 하신다.
그중 여원이 어머님의 걱정은 교우 관계였다.
"선생님...... 제가 직장을 다니다 보니 여원이가 친구를 사귀게 도와줄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다행히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 진호를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려운 부탁인 줄 알지만 여원이랑 진호를 꼭 같은 반에 배정해 주셨으면 해요."
가방장과 신발장 등 학급별로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부착하였고, 무엇보다 반편성 원칙에 따라 한 아이 한 아이의 상황을 고려하여 이미 확정된 반 배치를 입학 전에 다시 편성하기엔 시간상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아이의 적응을 위한 부탁을 외면하기 어려워, 선생님들과 고민 끝에 변경이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어 여원이를 진호가 배정된 학급으로 재배치하였다.
그리고 다행히도 같은 반이 된 진호가 여원이를 오빠처럼 챙겼고 여원이도 교우 관계에 있어서는 특별한 어려움 없이 유치원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두 달 남짓 지났을까.
놀이를 할 때면 앞장서던 진호를 따라 무엇이든 함께 하던 여원이가 새로 사귄 친구들과 놀이를 하게 되면서 진호와 여원 사이에 크고 작은 다툼이 일기 시작했다.
하루는 바깥놀이터에서 여원이가 같은 반 친구 미주와 시소를 타려고 했는데, 여원이와 함께 놀고 싶었던 진호가 개입하면서 밀고 당기는 소동이 있었다.
여원이가 진호의 손을 뿌리치면서 진호의 눈과 눈 사이에 붉고 선명한 손톱자국이 생겼고, 화가 난 진호가 여원이를 미는 바람에 시소 모퉁이에 부딪힌 여원이의 다리 한쪽에는 커다란 멍이 들었다.
아이들은 간단한 처치를 받은 후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잘못을 사과하며 웃으면서 손을 맞잡았지만 부모님들께 아이들의 다툼과 상처에 대한 안내를 해야 하는 내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
"아니, 뭐라고요? 남자애가 여자애를 떼려...... 선생님 제가 지난번부터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진호 그 아이가 자꾸 우리 아이를 괴롭히는 것 같아요."
"헉. 선생님, 손톱자국 흉지는 것 잘 아시잖아요. 손톱은 깎았대요? 네? 길지도 않은 손톱에 왜 이렇게 깊은 상처가 생겼을까요? 여자애가 남자애 얼굴을...... "
죄송합니다......
이러저러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고......
네? 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나는 사과와 함께 상황설명, 아이들의 발달 특성과 사후 대책 등등...... 여러 말씀을 나누었지만 흥분하신 부모님들의 마음을 가라앉혀드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를 향해 화를 내시는 것보다 더 당혹스러웠던 건,
두 아이를 함께 놀지 못하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날 이후로, 내가 두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지 않아도 둘은 서로의 얼굴을 어색하게 마주 보며 지나치거나, 둘 중 한 명이 다른 아이들과 놀 때 부럽게 바라보는 순간이 생겼다.
"왜, 같이 놀고 싶어?"
내가 물을라 치면 힘없이 고개를 흔들곤 하더니 하루는 나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엄마가 진호랑 놀지 말래요."
"여원이는 나쁜 애래요......"
진호와 여원이는 모두 풀이 죽은 표정으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게도 나는 부모님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화해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2학기가 되어 진호가 이사를 가면서 그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