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입학을 하고 3월 한 달간은 말 그대로 눈코 뜰 새가 없다.
겉옷을 벗어 놓는 자리와 옷을 정리하는 법, 가방과 소지품을 정해진 자리에 놓는 법, 심지어 화장실을 이용하는 방법까지도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한다.
선생님, 이건 이렇게 두어도 되나요? 아니면 넣어 두어요?
선생님, 저 아이는 옷을 그냥 바닥에 두었어요.
선생님, 이제 먹어요?
똑같은 설명을 들은 아이들의 해석은 각기 달랐다.
자기의 행동이 맞았는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아이, 누군가 잘못했다고 이르는 아이, 정말로 궁금해서 다시 물어보는 아이, 개중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아이 등.
그렇게 두어도 괜찮아.
OO야, 옷걸이에 한번 걸어 볼까?
아직 먹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줄래?
그리고 우는 아이를 달랠 때는 내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점심 식사를 시작하면 나는 아이들의 칫솔을 소독기에서 꺼내서 양치컴에 꽂아 화장실 문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양치를 마친 아이들이 스스로 소독기에 칫솔을 꽂으면 아직 양치를 하지 못한 어린이가 누구인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딸기향, 체리향 등 달콤한 과일향기를 첨가한 어린이 치약에 매력을 느끼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양치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치약을 삼키기도 하고, 세면대에 닿은 옷이 흠뻑 젖는가 하면, 차례를 기다리다가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양치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점심 식사 후 집에 가기 전까지 정해진 놀이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월요일 점심 식사가 끝나갈 무렵, 승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선생님, 저 칫솔이 없어요."
"응? 저기 없니?"
나는 아이들의 칫솔이 놓아진 테이블을 가리켰다.
"네. 엄마가 안 주신 것 같아요."
맞다.
나는 지난주 승우의 마모된 칫솔을 가정으로 보냈던 일을 생각했다.
어머님이 새 칫솔을 주시는 것을 깜빡 잊으신 걸까. 나는 승우의 가방 안에 칫솔이 들어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놀이를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후로 며칠간, 승우는 칫솔을 계속 가지고 오지 않았다.
"어머님, 승우가 칫솔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다시 연락드렸습니다."
"이상하네요, 제가 이름을 붙여서 보내드렸거든요."
"아하, 혹시 이름이 뜯어져서 주인을 찾지 못한 칫솔이 있는지 한번 더 찾아보겠습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번거로우실 텐데 제가 내일 하나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머님과 통화를 하고 메모도 보내드렸는데 계속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던 차에 승우의 가방장 옆에 놓은 소파 아래에서 하늘색 공룡모양의 칫솔을 하나 발견했다. 칫솔에는 '이승우'라는 이름이 선명히 새겨진, 반짝이는 라벨지가 붙여져 있었다.
헉, 이럴 수가.
고작 여섯 살 아이의 거짓말에 속다니.
분하고 미묘한 기분과 함께 양치를 하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한 승우에게 뭐라고 지도해야 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아침에 승우가 등원을 하면 가방에서 칫솔을 바로 확인해도 되겠지만 승우 스스로 솔직히 말할 기회를 주고 싶어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를 향해 승우가 다가왔다.
"선생님, 오늘도 칫솔이 없어요."
"뭐라고?"
"오늘도 칫솔이 없......"
승우가 말을 이어가는데 아이의 웃옷 앞섶에서 칫솔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 여기 있었네......"
승우는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칫솔을 주워 들더니 붉어진 얼굴로 양치를 하러 갔다.
"그래서, 가만 뒀어? 버릇을 고쳐놔야지."
내 얘기를 들은 김 선생님이 어이가 없다는 듯 훈계했다.
"거 봐, 성악설이 딱 맞다니까? 애들은 가르쳐야 돼. 이번에 그냥 넘어갔으니까 선생님 속여먹을 생각만 할걸?"
"에이, 그런 건 아니고. 오늘 일 말고는 진짜 거짓말했다는 증거도 없잖아요."
"여봐, 여봐. 큰 일이네. 선생님 성선설 믿어? 그러면 안돼 선생님, 애들을 지도해야지. 그냥 두면 심해질걸?"
김 선생님의 장담과는 달리 그날 이후로 승우는 양치질을 거른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을 앞 세워 그 아이를 지도라는 이름으로 모욕 주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그 아이는 조금 더 놀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