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그런 아이
점심을 먹고 바깥놀이를 하고 있는데 부담임교사가 교실에 남아있던 몇몇 아이를 데리고 왔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바깥놀이터로 나가려던 지안이를 뒤에서 정우가 잡아당기는 바람에 바닥에 넘어졌다는 거다. 상처를 확인하고 보니 팔꿈치에 타박상을 제외하고는 크게 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괜찮지? 약 발랐으니까 이제 놀아볼까?"
"선생님, 그런데 정우가 잡아당겨놓고 사과를 안 해요!"
"응? 그래, 정우야, 사과해 줘야지."
"나 안 했어. 선생님, 제가 안 잡아당겼어요."
"우리가 봤는데? 선생님, 정우가 거짓말해요! **선생님도 사과해 주라고 했는데!"
지안이와 함께 있던 두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정우를 향해 눈을 흘겼다.
"정우, 정말로 지안이 잡아당기지 않았어?"
"네."
어쩐담.
선생님, 아이들 이쁘죠? 그런데 거짓말도 잘해요.
다툼 생기면 이야기도 잘 들어봐야 하고 판단도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게 해 주셔야 돼요.
나는 난감한 마음에 작년 정우를 맡았던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려보았지만 뾰족한 해결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안이가 거짓말할 이유도 없을 것 같고. 본 아이들까지 있다고 하니까.
"정우야, 너 거짓말하면 선생님 정말 실망이야. 얼른 사과해 줘. 지안이 팔 봐봐. 얼마나 아프겠어?"
"안 했어, 거짓말 안 했어요!"
정우는 큰 소리로 부정하며 끝내 사과는 하지 않았다.
나는 정우의 화난 모습을 보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고, 그동안 정우가 했던 수많은 장난들을 떠올려 보았다.
재휘의 식물관찰일지를 가방장과 바닥 사이의, 보이지 않는 틈에 공을 들여 집어넣었던 일
그 구멍에(아마도 틈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작은 구멍에 얼마만 한 것까지 들어가는지 궁금해서 그랬어요.
그럼 왜 친구 것을 넣었어? 네 것으로 하면 되잖아.
제거가 안 보여서...... 그런데 그것 말고도 많이 넣어 봤는데...... 죄송합니다.
치약을 의자에 발라놓아서 지은이 스커트 깃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일
옷에 물감이 묻잖아요? 치약에도 색깔이 있으니까 옷에 묻는가 궁금했어요. 제가 앉으려고 했는데 지은이가 먼저 앉아서 그래요. 지은아, 미안.
교실 유리문에 침을 잔뜩 뱉어 묻혀놓았던 일
엄마가 편지 보낼 때 침 묻혀서 우표 붙였다고 했는데...... 침 묻혀서 색종이도 붙일 수 있나 궁금해서 그랬어요.
그냥 침을 뱉은 것이 아니고? 그럼 색종이는?
붙이려고 했는데, 애들이 일러서 못 붙였잖아요.
작년에 대구에서 이사 온 정우는 특유의 억양으로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열심히 설명했고,
정우의 창의적인 장난과, 그 행위의 이유는 항상 나의 상상을 초월하였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정우는 자신의 장난으로 누군가가 해를 입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할 줄 아는 아이였는데.
......
"해결이 잘 되셨나요?"
"아니, 정우가 끝내 사과를 하지 않았어요. 오늘따라 왜 고집인지."
"그러게 말이에요. 지안이랑 애들이 다 봤다고 하는데도."
"선생님이 직접 보신 게 아니에요?"
"아뇨, 저는 못 봤어요. 제가 봤을 땐 지안이가 넘어져 있었고 정우는 뒤쪽에서 의자로 장난을 치고 있더라고요."
"그럼 정우가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에이. 뻔하죠, 정우 원래 그런 애잖아요."
......
원래라니요. 원래부터 그런 아이는 없어요.
나는 부담임선생님 아니, 나 자신이 들을 수 있도록 힘주어 말했다.
정우가 했을 수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장난이 심하다는 이유로 정확한 사실도 모른 채 무조건 정우에게 사과를 강요한 것은 나의 잘못임이 분명했다.
......
내일은 정우에게 사과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