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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인형 May 17. 2023

전혀 당연하지 않은 멀미

천사의 비밀

오빠와 언니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엄마는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른 듯 방심한 표정으로 마루 끝에 앉아계시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 창문을 열고 오가는 차들을 눈으로 좇았다.


까맣고 번들번들한 차, 지독한 매연을 달고 내달리는 트럭, 바퀴가 작은 빨간 자동차......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는 노란 봉고버스였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옆 면에 그려진 동물들의 그림이 귀여웠고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노란 색깔의 차도 예뻤다.

가장 압권은 그 문이 열리고 차 안에서 천사가 내리는 순간이었다.

천사님이 곱슬진 긴 머리를 손으로 한번 쓸어 올리고는 하얀 손바닥을 들어 어딘가로 손짓하면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천사님은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한 명, 한 명을 모두 차에 태운채 어딘가로 떠났다.

저 아이들을 어느 곳으로 데려가는 걸까. 분명 신나는 곳일 테지.

나는 팅커벨의 뒤를 따라 공중으로 솟아오르던 피터팬을 떠올렸다.


혹시나 나도 노란 가방을 메고 저 길에 서 있으면 데려가 주진 않을까.

하루는 어이들을 모두 태운 천사님이 주위를 살피더니 무슨 말이라도 할 듯 입술을 달싹이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의 기억은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노란 봉고버스를 만난 것이 그 골목이 아닐 수도 있고 버스에 어린이들을 태우던 선생님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는 것도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나의 상상 속 일이었을 수도.


중요한 것은 '그날부터'라고 막연히 짐작되는 그 시간부터 나도 저 천사님처럼 노란 버스에 어린이를 태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천사님처럼 노란 버스에 어린이를 태우는 사람이 되었다...... 이 문장이 마지막이었다면 나의 꿈은 해피 엔딩을 맞이했을까.

......


수습기간 중 맡게 된 첫 번째 임무 중 하나는 노란 봉고버스에 여덟 명의 아이들을 태워 집으로 데려다주는 일이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안아 올리거나 아이의 손을 잡고 순서대로 차량에 오르도록 도왔다. 그리고는 서둘러 차량에 올라타 늦게 내리는 어린이들부터 뒷 자석부터 앉을 수 있게 자리를 정해 주어야 한다.

자칫 꾸물거리다가는 아이들끼리 다툼이 일어나기 일쑤다.

아이들을 모두 앉히고 벨트를 매어준 후에야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손바닥만 하게 코팅된 차량표를 들여다보며 어린이들이 모두 탔는지 확인했다.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조차 정확히 매칭되지 않아 차량지도가 쉽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나에게는 생각지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날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멀미였다.

아흑......


첫날에는 차량지도를 마치고 얼굴이 노랗게 질린 나를 보며 하면 할수록 익숙해질 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던 김 선생님도 전혀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내 멀미 앞에서 점차 싫은 기색을 내기 시작했다.

"차량 지도하는 선생님이 멀미를 하면 어떻게 해...... 멀미약이라도 먹고......" 

"선생님 죄송한데 저......"

솟아오르는 구토의 기미를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나를 항해 김 선생님이 혀를 찼다.

멀미를 느끼는 것이 마치 부당한 일이기라도 한 듯.


쯪..... 쯪...... 쯪.


멀미 따위 이겨내지 못한 나약한 선생이 되기 싫었던 나는 김 선생님의 혀 차는 소리를 떠올리며 숨을 참아 보았다가, 숫자를 세어 보다가, 먼산을 보다가, 침을 꼴깍 삼켜보기도 한다.

이제 큰 교차로를 지나 언덕을 넘어가면 마지막 아이가 내릴 차례다.

나는 양갈래로 머리를 땋아 내린 여섯 살 여자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휴.


심호흡을 하며 멀미를 가라앉히려고 애를 쓰는데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이름이 뭐예요?"

"선생님 이름?"

생각해 보니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반 선생님으로 불리는데 나는 아이들이 부를만한 이름이 없었다. 

가만있자, 뭐라고 말해 줄까? 그냥 내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너무 재미없잖아.


"천사. 천사 선생님."

"천사 선생님?" 아이는 눈을 둥글게 뜨고서는 손을 뻗어 내가 입고 있던 스커트 깃을 조심스레 만졌다.


"천사 선생님 예뻐. 선생님은......"

아이는 남은 말을 마저 하지 못한 채 누런 토사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나 내가 토할까봐 손에 쥐고 있던 비닐봉지를 신속하게 펼쳤다. 다행히 옷에 많이 묻지는 않았지만 의지와 다르게 냄새나는 덩어리들이 쏟아지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모두 게워내기를 기다렸다가 괜찮다고 다독이며 비닐봉지를 묶으려는 순간, 나 역시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우웩.


"에헤, 거 참. 선생님!"


아이는 기사님의 호통에 당황하여 토사물을 정리하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천사도 토해요?"

하.   하.   하.


나는 진지하고 천진한 아이의 표정을 보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럼. 천사도 토할 수 있지. 대신 그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

아이는 혼자 토하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받았을까. 차에서 내린 아이는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노란 봉고버스의 천사 선생님이 나의 워너비가 되었듯

나도 누군가에게 눈을 맞추고 웃어주는, 그 웃음이 위로가 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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