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을 묻는다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답변은 본능을 이성적으로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상당히 얕잡아보았던 본능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식욕이다. 이런 생각은 툭하면 끼니를 거르는 나의 생활태도와도 이어졌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아침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학생 때는 한 술의 밥보다 십여분의 아침잠이 달콤했고 대학 시절에는 강의가 비는 시간에 친구들과 나누는 커피 한잔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체력을 요하는 직종의 특성상 직장에 다니면서부터 아침밥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것이 아침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당직업무가 있는 주간에는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여섯 시 사십 분에는 집을 나서야 일곱 시 이십 분까지 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전 간식을 먹는 열 시 무렵엔 아침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망각할 만큼 정말 배가 고팠다.
허리를 굽혀 간식통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어서는데 머리가 핑 돈다.
어지럼증을 느끼며 간식통을 열어 세어보니 어른손가락 두 마디 정도 두께의 치즈맛 빵 스물두 개와, 더 먹을 유아들을 위한 여분의 빵 네다섯 개가 들어있다.
결석생 한 명을 제외한, 스물두 명이 먹을 분량의 빵이다.
아이들은 생김새도 제각각이듯 먹는 속도와 스타일도 모두 달랐다.
빵 일부분을 잡아 입으로 베어문 다음 손바닥으로 빵을 입 안으로 쑥 밀어 넣는 아이, 이로 조금씩 베어 입 속에서 녹이듯 천천히 먹는 아이, 손가락으로 정말 손톱만큼 떼어 꿀꺽 삼키는 아이 등......
나는 빵을 빨리 먹은 아이들이 여분의 빵을 다 먹기 전에 남은 빵을 네 등분으로 나누어 모두 한 조각씩을 더 먹을 수 있을 만큼 잘게 잘랐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금세 내 책상 앞으로 모여들었다.
"더 먹고 싶은 어린이! 손들어 볼까?"
이미 간식 그릇을 정리하고 놀이를 시작한 아이들부터 아직 간식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살펴보며 다시 한번 더 물었다.
"빵 더 먹고 싶은 사람 이제 없어요? 그럼 선생님이 이제 정리한다?!!"
아까워.
나는 간식통을 들고 일어서며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의 빵을 입 속에 넣었다.
허기짐에 무심코 집어먹은 남은 빵 한 조각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
** 엄마가 전화를 하셨대요. oo반 선생님이 간식을 먹어버리는 바람에 더 먹고 싶었는데 못 먹었다고.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왜 애들 먹을 것에 손을 대요?
죄송합니다. 여러 번 물어봤지만 더 먹고 싶다는 아이들이 없어서 정리하면서 제가 먹은 거예요.
하아...... 정리할 거면 조리실에 갖다 놔야지 왜 먹어요. 아이들이 남긴 걸 먹게.
걸신이 들렸나 추잡스럽게.
추잡스럽게......
추잡스럽......
추잡......
아마도 그날은 '전날에 야근'을 하고 '다음날 당직인데 늦게 일어나'서 몇 '숟가락의 아침밥조차 먹지 못한 채 출근한', 세 가지의 악재가 모두 겹친 날이었을 거다.
그래도 그렇지.
그러면 안 되는 거지,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본능을 이성적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아이들이 먹을 것을 탐낸, 혹은 남은 것을 추잡스럽게 먹은, 사람이 된 나.
자존감의 뿌리 속에 깊이 박힌 모멸감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되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