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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석 Oct 04. 2024

[브런치 표류기] 3일 차

여행 같은 하루

  반복되는 하루는 우울감을 불러온다. 그래서 때로는 목적지를 두지 않고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난다. 어디를 갈지 나도 모른다. 정류장으로 가,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음악을 고른다.


  무작위로 고른 플레이리스트에서 나오는 음악 중,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멈추고 내린다. 그러면 그곳이 그날 내 목적지가 된다.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일 수도 있고 1시간이 넘는 곳일 수도 있다. 한 번은 좌석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을 간 적도 있다. 걷다가 근처에 역이 있으면 전철을 타기도 한다. 그날은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고민을 하기 전 이미 발부터 움직인다.



뜻밖의 인연들



  비계획적인 일을 저지르는 날이면 낯을 많이 가리는 나도 용감해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옆에서 식사하시는 아저씨들의 대화를 듣다가 맞장구를 치며 끼어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절대로 닿을 일이 없는 사람들과 인연이 생기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만난 팥빵 할머니



  그날은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당연히 목적지는 없었다. 내가 갔던 역은 안산의 위치한 '중앙역'으로 4호선이었다.


  서울 방면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큰 보따리를 짊어지고 계신 할머니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시는 모습이 눈에 계속 밟혔다.


  할머니에게 다가가,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딸이 안양에 사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셨다. 할머니의 말을 듣고 그날 내 목적지가 생겼다.


 할머니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내게 나이가 몇이냐부터, 무슨 일을 하냐,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들이냐, 할머니는 젊은데 취업해야지 하시면서 잔소리도 잊지 않으셨다. 그러다 갑자기


  큰 보따리에서 팥빵을 꺼내셨다. 그러곤 내게 주시며 먹으라고 하셨다. 지하철 안에서 음식을 먹기 좀 그랬지만, 다행히 사람들이 적고 빈자리도 많아 팥빵을 받아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다.


  할머니가 주신 팥빵은 일반적인 팥빵이 아니었다. 직접 밀가루부터 손으로 빚어 만드신 팥빵이었다. 다 먹고 나서 할머니에게 직접 만드신 거냐고 물어보자, 그럼 팥빵은 내가 만든 거 아니면 입에도 안 대.라고 말하셨다. 따님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어느덧 열차를 갈아타야 할 금정역에 도착했다.


 할머니께 지금 내려서 열차를 바꿔 타야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보따리를 대신 들어 드리며, 함께 열차를 내리고 플랫폼에서 기다렸다. 할머니의 숨이 고르게 퍼지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힘드세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씀은 화장실이 급하신 것이었다. 할머니는 화장실을 들르면, 당연히 내가 떠날 줄 알았던 것 같다.


"할머니, 팥빵 값은 해야죠"


  할머니는 머쓱하게 무슨, 그게 얼마나 한다고.라고 말하시면서 환한 미소를 숨기지 못하셨다. 때로는 어릴 때의 순수함이 나이가 지긋해지면서 다시 피어나나 보다.

  

  화장실에서 돌아오신 할머니와 열차를 기다리며 따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자랑을 하시든지 따님이 어떤 분일까 정말 궁금했다. 머리도 좋고, 요리도 잘하고, 예쁜 할머니의 따님은 한창 이야기꽃을 피울 때 전화가 왔다. 할머니는 역시 우리 딸은 타이밍도 기가 막혀라고 말씀하셨다. 왜 그때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났을까..


  할머니는 따님에게 멋진 청년이 데려다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정말.. 멋진 청년이라고 하셨다..) 따님은 아마, 걱정이 되셨는지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핸드폰을 내게 넘기셨다.


  핸드폰 너머로 익숙한 연령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략 할머니의 연세를 보면 따님의 나이가 어느 정도 일지 알 수 있었지만, 통화를 하고 나서 역시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연세이신 것 같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따님께서는 고맙다는 말을 정말 계속 계속하셨다.. 사례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셔서 괜찮다고 이미 팥빵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통화를 끊고 얼마 뒤 열차가 쿠르릉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금정에서 안양은 금방이었다. 안양역에서 할머니는 택시를 타고 가셨다. 떠나시는 마지막까지도 내 소매를 잡으며 집 가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셨다. 사실, 그전에 할머니는 4만 원을 챙겨주려고 하셨다. 다시 택시로 그 돈을 넣어드리느라 정말 너무 힘들었다...


  할머니라고 해서 힘이 약하신 게 아니었다.. 나보다 더 힘이 세셨다..


  할머니는 그럼 팥빵이라도 하나 더 먹으라면서 보따리에서 팥빵을 꺼내주셨다. 떠나는 택시를 보며 팥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할머니의 정성 담긴 손맛이 났다.



마치며



  소소하다면 소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모두 깊은 추억과 감상을 남긴다. 뉴스에서는 매일 같이 어지러운 이야기들만 전해 나오고, 어지러운 세상은 더 어지럽기만 하다.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한다. 때로는 그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속에서 작은 아름다움을 계속 발견하면서 살고 싶다.


 희망을 잃은 삶에 꿈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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