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가 되던 날

1부 습작기행

by 서지석

제목: 미아가 되던 날



너는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윙 윙 윙

이 소리가 들리지 않냐고 묻는 너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건

비 오는 날젖은 꽃다발뿐이었고

향은 사라지고 있는 계절이었다.


보이지 않는 습기는 목을 조르고

쉬기 위해 그은 획은 숨이었는데

눈앞에 뛰고 있던 심장은 너를 지나쳐

나를 보며 뛰고 있었다.


새 턴테이블에서 돌아가던


금 간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


어느 토요일 밤 정각이에요


이곳 모든 것들이 날 죽이고 있는 것 같아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노래를 불러줘, 오늘 밤 우리에게


흠뻑 빠질 준비가 되어있어.


제목: 다이얼로그



세상을 뒤로하고 검은 잉크로

칠해 만든 무대

거기서

여기로


시작되는


나와 나의


비밀의

다이

얼 로 그


-파도야

-사막인걸


-사과는 쓰고

-약은 달지


-사라지고 싶어

-기억되어야 할 걸


-우리가 결국 남기는 건

-스너프 필름 따위겠지


-누굴 죽여?

-너


-나?

-나


...

...


제목: 허기



너는 내게 그만두라고 말했다.

죽고 싶어서 쓰는 건

대체, 무슨 병이냐고


거꾸로 기울어진 것이 있었고

그건 네 발목이었다고

난 여기 앞에 있었지만

곁에 없었다.


제철 과일을 모담아 박제했다.

먹을 것이 아닌 태울 것들이었다.


형광 없는 천장에 걸린

투박한 못

그건 사실

순은이라는 것을

너에게는 알려야 하는데

눈이 자꾸 감긴다.

눈이

자꾸

감긴

다아


제목: 내가 할 수 있는 건



툭 하고 펜을 내려놓는다고

마침표가 찍히는 건 아니었고

말끝에 점 하나 찍는다고

끝나는 건 없었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이렇게

계속 쓰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계속 쓰는 거라고, 아무 말도

할 말이 아- 사실 생각도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쓰는 거라고

나는 글을 쓰고 싶으니까 쓰는 거라고

글을 써서 대접은 못 받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쓰는 거라고 돈은 못 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쓰고 뱉고 짓고 짖는

거라고, 나는 계속 쓰고 싶으니까 쓰는

거라고 아무 의미도 없고

아무도 관심이 없지만

내가 사랑하니까 쓰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러니

까 나는 계속 쓸 거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쓰는 거라고 세상 태어나 숨 쉬는 거 다음으로 아, 걷는 거 아, 먹는 거 아, 젠장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계속 쓰는 거


제목: 수작



부서진 조개껍데기 속에서도

바닷소리는 들려왔다.


흐린 아래 기어가던

집 잃은 얘

그건 뻔한 내 얘기고


습한 공간 끈적함을 더하던

검은 정장, 색깔 모자를 쓴

그런 음악이 흐르던 순간


명곡이야, 아주.

버드와이저를 따던 아저씨가 말했다.


명곡이야, 아주.

캔 콜라를 따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심장은 박자에 맞춰

아. 음. 아. 음.

나른함, 끈적함, 신남, 흥분.. 쿵!


거친 파도 소리 쾅!


바스락, 한 부분이 부서지는데

안에 든 게 많아

새어나가지는 않을까 걱정했었지

그때 다행히 음악이 바뀌었고

시간이 멈췄

다.

네가 웃는다.

왜 웃는지 나는 모른다.

모르는 것이 많은 나는

가만히 있었다.

뚝,

하고 음악이 끊겼다.

너는 여전히 웃는다.

웃음은 전염병이 있어

너를 보며

모르는 것이 많던 나도

웃었다.



목요일 연재
이전 02화빈틈은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