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 그래도
1.
차라리
“차라리 바쁜 게 낫지”
“차라리 저기에 집을 살걸”
“차라리 그때가 좋았지”
2.
그래도
“그래도 이 정도면 할만하지”
”그래도 집을 사놓은 게 어디야“
“그래도 지금이 행복하지“
‘차라리’는 부정의 언어이다.
‘그래도’는 긍정의 언어이다.
차라리 < 그대로, ‘그래도’가 1승이다.
3.
차라리
“차라리 이렇게 해보자”
“차라리 재수를 해볼까?”
4.
그래도
“그래도 그냥 있는 게 낫지”
“그래도 지금 대학생활도 좋은데…“
‘차라리’는 도전의 언어이다.
‘그래도’는 안주의 언어이다.
차라리 > 그래도, ‘차라리’가 1승이다.
‘차라리’는 어찌 보면 불만족의 언어이지만,
또 어찌 보면 변화를 시도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래도’는 어찌 보면 만족의 언어이지만,
또 어찌 보면 체념과 안주를 내포한다.
생각은 시각과 연계되어 있다.
당신은 위의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술잔? 아니면 마주 보고 있는 두 얼굴?
같은 환경에서, 같은 대상을 봐도, 그 시각은 다르다.
바라보는 대상, 환경은 주어진 값이나,
무엇을 보는가는 우리의(나의) 선택이다.
‘차라리’와 ‘그래도’는 모두 비교에서 나온다.
현실(here & now)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바라보는 그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보는 대상을 더 좋게 여긴다면,
나의 머리와 입술에는 ‘차라리’라는 단어가,
현실(here & now)을 더 좋게 여긴다면,
나의 머리와 입술에는 ‘그래도’라는 단어가,
맴돌 것이다.
‘차라리’와 ‘그래도’는 모두 비교에서 나온다.
제3자와 비교
“남의 떡이 커 보인다”
”그래도 내가 낫지“
과거와의 비교
”차라리 애굽이 더 좋았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
죽은 가능성과의 비교
”차라리 저 길로 갈걸“
”그래도 저 길로 안 가서 다행이야“
A와 B의 갈림길에서 A를 선택하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드는 생각, ‘만약, A가 아닌, B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다만, B를 선택했을 때의 모습은 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설일 뿐이다.
만일 평행우주가 있어서, 다른 차원에서 B를 선택하여 걸어간 또 다른 내가 있고, 내가 그를 만나서 객관적으로 비교한다면 모를까… 예전 TV프로그램에서 “그래 결심했어“라며, A를 선택했을 경우의 스토리와 B를 선택했을 경우의 스토리를 각각 보여준 기억이 난다. 그 프로그램과 달리 우리는 인생을 리와인드해서 다시 선택의 순간으로 되돌릴 수 없다.
선택에 대해서는 공지영 작가의 명언이 최고이다. <즐거운 우리집>에서 딸에게 하는 조언이다. “어떤 선택이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 미리 아는 길은 없어.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선택이 좋은 선택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뿐이야.” 공지영 작가는 ‘그래도’형 사람인 것 같다. B의 선택에 대한 미련은 지우고, 내가 고른 A가 좋은 선택이 되도록,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도록 분투하게 하는 그의 명언을 나는 참 좋아한다.
혹은 갈림길에서 헤어진, B를 선택한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대개의 경우 적합하지 않다. A와 B를 선택하는 조건 이외에도 다른 많은 인수들이 그와 나 사이에 개입되어 있다.
직장생활에도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여러 번 있다.
나의 이전 선택들을 회고하며,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차라리&그래도’
차라리 HR이 아닌 영업 직무를 선택했다면…
(다소 후회와 미련, 아쉬움이 섞여 있다)
<
그래도 HR을 선택하길 잘했지.
(선택에 대한 만족과 합리화)
차라리 중국에 오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면…
<
그래도 중국에 와서 근무하길 잘했지.
차라리 그때 그 회사로 이직을 하였다면…
<
그래도 이 회사에 남아있길 잘했지.
오늘
나의 시각은 어떠한가?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오늘 어떤 용어를 쓰고 있는가?
(차라리? 그래도?)
나는 오늘 어떤 용어를 쓰기로 선택하는가?
(차라리? 그래도?)
언어는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생각은 언어로 표출된다. 마치 닭과 달걀의 문제처럼, 순환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정신건강상 ‘그래도’를 머리와 입에 달고 사는 게 좋다. 그래도 너무 안주하지는 말자. 가끔은 ‘차라리’를 꺼내어 보자. 단,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하여는 ‘차라리‘를 쓰지 말자. 이미 20여년이 넘은 일들에 ’차라리‘를 더해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