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 않은 사소함 #7
2년 전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주로 서울 내산. 낮은 산 위주. 초보 코스만. 자주 가는 편도 아니지만. 어쨌든 초중교 수련회 때면 꼭 등산을 갔었던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부담이 되고 싫었던 내가 자의로 등산을 한 것만으로도 참 많이 변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올해는 등산을 본격적으로 다니진 못했다. 그래서 조만간 가까운 산에라도 갈 생각이다. 그런 마음을 먹고 있다. 마음만, 먹은 건 아니다. 정말 갈 거다.
아무튼 등산을 하게 되면서 든 이런저런 생각이 있는데, 하나는 등산은 지구를 가장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 같다는 거다. 평지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걸을 때의 걸음은 그저 관성일 따름이다. 하지만 등산을 할 때는 오르다 오르다, 힘에 겨워 겨우 앞으로 나아갈 때, 그때. 내 온몸의 무게는 온전히 지구를 밟는다, 밟고 나아간다. 한걸음 내딛는다. 평소 걸음과는 분명 다른, 발밑에 지구라는 대지가 있음을 체감하는 행위. 이런 똥 같은 생각을 나름 멋지다고 생각하며 써 본다.
또 하나는 내가 평발이었다는 사실이다. 몰랐던 게 아니라 잊고 있었던 사실. 친구랑 산에 오르다 쉴 때, 땀에 흠뻑 젖은 양말을 보고는 불현듯. 처량하게 고통을 토해내며,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있는 내 발을 보며 그 사실이 생각났다.
'아 나 평발이었지... 내 평발아 너도 고생한다.'
예전에 나는 내가 왜 평발 같은 그런 좀, 뭔가 게임 캐릭터 능력치로 따진다면 허접한 능력치의 발을 가졌을까, 같은 생각을 했었다. 크면서 머리도 마음도 성숙해졌는지, 더 이상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또, 하루키의 에세이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서
'생각해 보면 채소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채소마다 마음이 있고 사정이 있다.'이런 하루키의 생각처럼. 채소에도 마음이 있고 사정이 있다면 내 발에도 마음이 있고 사정이 없으란 법은 없을 것 같아서(내 마음과는 별도로).
이제, 몸에 착용하거나 몸과 밀착해서 사용하는 물건들은 '인체공학'이란 게 당연하게 따라붙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등산화도 당연히. 그럼에도 내 평발은 이런 '인체공학'과는 꽤 멀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은 것 같다.
애처롭다, 평발 참.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
다르게 생각하면, 지구와 이같이 가까운 발도 없을 테다. 발의 모든 감각이 지구와 온전히 맞닿는 발. 그것이 평발인 것이다.
친지구적인 발. 지구공학적인 발. 그래, 이제부터 내 평발을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 마음대로. 억지 같을까? 그럼 하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