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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an 16. 2024

말이란 것은


말이란 건 묘하다. 존재하지 않는 마음이 그린 것에 대해서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떠올리게 한다. 학습의 결과다. 추상적인 이미지에 대해 반복적인 각인이 이루어지면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형상을 그리고 색을 덧입힌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기도 하고 전승된 유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념적 사고는 동과 서가 다르고 남과 북이 다르다. 내가 속한 사회의 투영이 생각인 거다.

단어 몇 개를 쓰고 펼쳐놓으면 이내 그 말들이 만든 세상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여름, 해변, 뜨거운 태양, 야자수.... 이런 글자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금방 열대의 바다를 떠올리게 되고 시원한 야자나무 그늘을 찾는다. 고운 모래밭에 철퍼덕 주저앉아 망중한을 상상하게도 된다. 어떤 사림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해먹을 묶어두고는 바람결에 흔들렸으면 좋겠다 할 테고, 또 어떤 이는 넓은 평상 하나 가져다 놓고 한숨 늘어지게 자면 좋겠다 할 수도 있다. 누구든 평소 쉽게  접했던 것들을 가져다 꾸미는 게 보통이다. 결국 내가 속한 현실이 상상의 세계를 보충하고 완성하는 주재료다.

公無渡河 공무도하

公竟渡河 공경도하

墮河而死 타하이사

當奈公何 당내공하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은 기어코 물을 건너셨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님을 어찌할꼬.


公無渡河歌에서 보여주는 관념적 언어는 河물이다. 첫 번째 연에서 백수광부의 처가 말한다. 그대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물은 죽음이고 영원한 이별을 뜻하기에 그렇다. 처는 애절하게 말류 하였으나 그는 끝내 물을 건넜다. 세 번째 연에서 직접적인 죽음을 이야기한다. 타하이死, 물과 죽음이라는 관념을 등치 시켜 물의 상징성을 직접적으로 설명한다. 그대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님을 어이할꼬. 한탄의 말을 남기고 백수광부의 처도 결국 물에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한다. 마지막 연에서 何는 '어찌할꼬'의 탄식에 죽음과  사랑의 중의를 내포하기도 한다.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완성되는 영원한 사랑을 당내공何의 何(河와 운율을 맞춰 중의를 내포)로 완성한다. 견우와 직녀의 설화도 공무도하가와 일맥상통하는 물의 관념을 보여준다. 건널 수 없는 銀河水를 사이에 두었으므로 이별이다. 그렇지만 까마귀와 까치의 烏鵲橋가 있어 여기서도 물은 영원한 사랑을 뜻한다. 동양적 사고의 학습이고 전승이기도 하다. 많은 현대의 이야기 속에서도 강과 바다는 그래서 이별과 죽음을 풀어가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서도 깊은 내면에는 결국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물을 보여준다.

말은 그래서 곱씹어 생각하다 보면 끝 간 데 없이 빠져드는 늪과도 같다. 붓을 들어 말 하나 끄적이는 것은 도처에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말은 묘하고 생각은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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