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봄 Jan 17. 2024

단심丹心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제는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우리 내일 또 보자 말을 건네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만으로 참 좋았습니다.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내일은 또 얼마나 다정한 말이 나를 감동시킬까 궁금해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저무는 하루의 끝에 오늘도 고생했어. 툭 말 하나 남기면 그만입니다. 건네는 말에 또 그런 말 하나 내 귓전을 파고들겠지요. 종일 가봐야 말 하나 건넬 사람이 없습니다. 며칠 동안 현관문은 단 한 번도 여닫지 못했습니다. 내린 눈이 얼어붙어 빙판입니다. 엉금엉금 겨우 집으로 돌아와서는 성문처럼 빗장을 채웠습니다.

책을 펼쳐 들었을 때 어제는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하는 몇 줄의 글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우연한 시간에 우연히 마주친 글귀가 가슴을 파고듭니다. 몇 줄 우물우물 읽다가 책장을 덮어버렸습니다. 자랑질만 같아서 그랬습니다. 우쭐대는 모습이 적잖이 눈에 거슬렸다 할까요. 밴댕이 소갈딱지라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겨울은 말이 귀한 계절입니다. 가뜩이나 입에 곰팡이가 피는데 눈이 내려 빙판을 만들고야 맙니다. 골절의 두려움이 짧은 외출도 포기하게 만들고 그러면 덩달아 입을 뗄 일도 사라져버립니다. 천 근의 무게를 가진 남자가 됩니다. 그저 수다스러운 남자로 살고 싶은데 현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강요된 침묵이 길어지네요. 이 계절이 강요하는 하루의 풍경입니다.

그래, 오늘도 고생했다. 잘 자고 내일 또 보자. 귀한 말들은 어디쯤에서 동면에 들었을까요. 하나씩 둘씩 멀어진 인연들이 짊어지고 떠난 말들입니다. 사람만 떠난 게 아니라 그만큼의 말들도 함께 떠나는 게 사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나이를 먹을수록 입에 올리는 말들도 자연스레 줄어들고야 말지요.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어떤 말들이 가슴 뭉클한 하루를 만들까 궁금합니다 하는 따위의 말도 한 걸음씩 뒷걸음질 치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 참 큰일이다 가슴을 쓸어내려도 결국은 아스라이 사라지겠지요.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들고 매일 아침을 기다린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또 하루가 시작됐구나 반가운 마음이 든다는 건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지 모릅니다. 붉은 태양 떠오르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얼굴 붉게 피어나는 행복입니다. 햇살 닮은 얼굴에 번지는 미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이란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