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부서지는 거리는 뜨거웠다. 간간히 부는 바람이 아니었다면 숨은 턱까지 차오를 게 분명했다. 가로수 그늘을 찾아 걸음을 옮기고야 말았다. 벌써?' 하고 말을 떠올렸지만 봄날의 꽃잎이 떨어진 지 오래였으므로 이내 수긍했다. 게으른 남자 하나가 계절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화들짝 놀란 꼴이었다.
여름이었다. 부지런을 떨 것도 없이 제 걸음으로 걸어온 여름은 이제 막 문지방을 넘어서고 있었다. 대지는 점점 열기를 더하고 가로수 푸른 잎들은 초록을 더해 어두워질 거였다. 매미가 목이 쉬도록 울 터였고 가끔씩 장대비로 소나기는 골목을 기웃거릴 터였다.
목이 빠져라 기다릴 것도 없다. 발목이 시큰해지도록 까치발로 마중을 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가슴팍에 오매불망 네 글자를 새겨놓지 않아도 계절은 얼굴을 바꾸고 또 총총총 잰걸음으로 떠나는 거였다. 언제나 마음 졸이고 애태우는 건 사람의 일이 전부였다.
"벌써 계절이 이렇게 됐었나?"
무심한 내게 꿀밤 한 번 먹이면 그만이었다. 알아서 오고, 알아서 여물고, 그렇게 알아서 떠날 계절이었다. 커다란 그림자 징검다리 삼아 휘적휘적 초여름을 걸었다. 번지르 윤이 나는 문지방 위로 햇살 한 줌 오롯이 걸터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