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10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by 이봄

'드디어 내일이야!' 며칠을 기다리고서야 마주한 말입니다. 약속을 잡고서 며칠을 어떻게 보냈는지, 하루가 얼마나 길던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빠르기만 하던 시간은 어쩐 일인지 걸음을 멈췄습니다. 느릿느릿 걸을 생각은 안 하고 딴짓거리만 하는 꼴이었습니다. 지켜보는 남자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데, 세월아 네월아 너는 가거라. 나는 여기서 낮잠이나 한 숨 자련다. 요지부동 떼쓰는 아이처럼 발장구만 치고 있었습니다. 일각이 여삼추라고 했던가요? 지난 며칠이 그랬습니다.

내일이면 널 보는구나 생각하니 잠은 달아나고, 심장은 벌렁거려서 청심환이라도 한 알 먹어야 하나 할 정도였지요.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세수를 하고 옷을 골랐습니다. 아직 서두를 시간은 아닙니다. 약속한 시간은 아직 멀찌기 있었고, 가는 길은 번거롭지 않아서 느긋하게 준비해도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괜한 조바심이 엉덩이를 들썩이게 합니다.

"그래, 차라리 일찍 올라가서 기다리는 게 낫지"

중얼거리면서 주섬주섬 옷을 입었습니다.

'여기서 동서울까지는 1시간 20분, 그리고 강변역에서 당산역까지는 대략 40여 분, 캔커피 하나 마시면서 담배를 한 대 느긋하게 피운다고 해도 대충 삼십 분 정도는 일찍 도착하겠네' 노정을 계산도 했습니다.

오늘따라 버스는 또 왜 이렇게 느려 터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운전석의 기사마저 등딱지 둘러맨 거북이로 보입니다.

"우리 한 번 보자"

말을 했을 때 너는 망설이면서 대답하지 못했다. 만남이란 게 쉽지만은 않을 터여서 마냥 조르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미 만나고 싶어 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고받은 말들이야 차고 넘칠 만큼 많았지만 현실에서 만남은 또 다른 얘기임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게 칼로 무 자르듯 잘라낼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만나고 싶고, 만나면 손 잡고 싶은 게 당연한 욕심이고 마음이지요. 남자가 그랬습니다.

"우리 지금은 그냥 이렇게 문자하고 통화하면서 지내면 안될까?"

"뭐 안 될 거야 없지. 하지만 좀 만나면 안 되니? 정말 보고 싶어서 그래"

"......."

"에이. 그러지 말고 한 번 보자. 응? 응? 응?"

아양을 떨었습니다. 응석도 부리고 떼도 썼습니다. 꼭 한 번은 봐야만 할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보고 싶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만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도 꼭 봐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산이 거기에 있으므로 산을 오른다는 등반가가 있고, 바다가 날 부르니 낚시를 한다는 낚시에 미친 조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꽃이 피었으니 벌이 찾고 나비가 날아듭니다.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너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너는 이미 내게로 와서 꽃으로 피었으니 나는 네게로 날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보다 더한 이유가 있을까요? 잠을 설친 남자는 충혈된 눈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입가에 가득 함박웃음 머금고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