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낯선 길과 마주하고 말았습니다
청춘을 보낸 충무로가 내려다 보이는 남산에 올랐습니다. 미로 같은 골목들이 이마를 맞대고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길은 남산을 접하고 명동에서 동대문으로 이어진 퇴계로가 있고, 청계천에 못 미쳐 시청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달리는 을지로로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사이로 수많은 골목이 미로로 이어져 사람들을 품었습니다. 기계소리 쉼 없이 뿜어내는 인쇄소 골목이 있고, 인쇄소 공장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종이를 종일 재단하는 지업사 골목도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인쇄골목이고 종이 골목인지는 나눌 수가 없습니다. 서로 뒤엉켜서 살아갑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골목마다 고깃집에 백반집이 점점이 박혀 손님을 부르고, 뉘엿뉘엿 해걸음이면 소주 한 잔에 불콰해진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몰려갑니다.
한때는 영화인들이 주름잡던 길이기도 했습니다. 퇴계로 오거리에서 을지로 3가 사거리로 걷다 보면 길의 중간쯤에 명보극장 사거리가 있습니다. 이 동네를 충무로라 부르게 된 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살던 집터가 사거리쯤이라고 합니다. 표지석 맞은편에는 지금도 충무로가 영화인들의 마을이었음을 말해주는 대종상의 상징인 대종상 동상이 햇빛으로 반짝이며 서 있습니다.
영화사가 건물마다 자리하고 또 그만큼이나 많은 디자인 회사들이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디자인 회사들이 옹기종기 모였으니 자연스레 하청업체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섭니다. 그렇게 형성된 골목들이 마을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인쇄골목이다 종이 골목이다 하는 식으로 마을을 이뤘습니다.
사회의 첫발을 충무로에서 시작하고 이십여 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청춘을 온전히 보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은 시간입니다. 이십 대 중반의 청춘이 쉰 살의 턱밑까지 세월을 보낸 마을입니다. 골목과 길은 손금을 들여다보듯 뻔했습니다. 눈 감고도 걸을 수 있는 길이라고 허풍을 떨어도 괜찮을 길, 충무로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올랐습니다. 가을이 막 시작되려고 합니다. 노란 은행잎이 장관인 남산 순환도로는 아직 푸른 옷을 입었습니다. 산 정상 가까이에 늘어선 느티나무 몇 그루만이 어정 띤 가을 옷을 입었습니다. 이십여 년을 턱밑에서 보냈지만 남산타워 전망대를 올라온 것은 처음입니다. 늘 밑에서 올려다본 전망대였습니다. 꼬박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면 가끔 쳐다보던 전망대였습니다.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반짝였습니다.
깍지 낀 손이 따뜻했습니다. 멀리 종묘며 궁궐을 보기도 하고, 한강을 사이에 두고 빼곡히 늘어선 아파트 숲들도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서울이 예뻐 보였습니다. 꽃 같은 사람이 옆에 있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남산의 그 유명하다는 돈가스 집을 지나쳐 을지로를 걸었습니다. 잉크 냄새 익숙한 골목을 지나고 호불호가 분명하다는 평양냉면을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면 꼭 같이 먹고 싶었던 냉면입니다. 불문율처럼 되어버린 메뉴를 선택합니다. 물냉면에 돼지고기 수육 한 접시를 시켰습니다. 물론 어색함에 용기를 더해주는 소주도 한 병 시켰지요. 잔이 마주치고 시원한 냉면을 먹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역시나 냉면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마주 앉은 사람은 연신 웃음 짓게 합니다. 한낮에 즐기는 낮술이 몽롱합니다. 취해 흔들리는 거리가 낯설어 보였습니다. 난생처음 걷는 길인가 싶었습니다. 낯설지만 좋은 기분입니다. 낡아 추레한 골목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모릅니다.
"세상에나 이 길이 이렇게 예뻤구나!"
감탄을 하면서 남자가 흔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