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깜박이며 졸다가 눈을 떴습니다. 어디쯤 왔을까? 차창 밖 풍경이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낯선 거리가 눈에 묻힙니다. 차들은 엉금엉금 거북이걸음으로 걸었습니다. 진눈깨비 잔뜩 뿔난 얼굴로 몰아치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지친 불빛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폭설입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걸음들이 거리에 묶인 날, 속절없이 군고구마는 봉투에서 식었습니다. 고소한 통닭은 지레 풀이 죽어 눅눅합니다.
빼꼼히 문을 열고 아버지 오시기만 기다리던 아이들은 애만 탔습니다. 맛있게 익은 붕어 몇 마리 파닥거리며 귀가를 재촉을 했지만 도로는 온통 물고 문 차량의 행렬로 시끄러울 뿐 움직임은 없습니다.
미동 없는 길을 보다가 생각이 아득합니다. 길은 구리를 벗어난 어디쯤일 겁니다. 먼 둔덕이 눈보라에 희미했지만 먹골배 튼실하게 키우던 배밭이 맞습니다. 시원한 과즙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을 날에도 길은 막히고, 차들은 꼬리를 물었을까요? 가야 할 길은 까마득한데 험악하게 벌린 밤의 아가리에서 진눈깨비만 펑펑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올망졸망 아이들이 채근을 합니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 붕어빵 사 오신다고 했는데..."
"금방 오실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알았지?"
어렸을 때도 오늘처럼 눈이 내렸습니다. 신작로로 몰려든 눈보라는 시야를 가리고 걸음을 붙들었습니다. 산에서는 연신 진눈깨비 떼 지어 몰려들고, 초등학교 어린아이는 눈물범벅으로 고갯길을 넘었습니다. 폭설입니다. 먼지 풀풀 날리던 길에는 땅을 기어가던 눈들이 일제히 일어나 짐승처럼 달려들었습니다.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번뜩였습니다. 걸음을 서둘러도 아이의 걸음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습니다. 책가방이며 머리며 온통 눈이 쌓였습니다. 떨어내도 떨어내도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무게를 더합니다.
절로 엄마를 찾게 됩니다. 엊그제 다투고 토라진 형을 불렀습니다. 우의 좋던 형제가 고개로 남았을까요. 마주 보고 선 형제 고개를 울며불며 넘었습니다. 엄마를 부르고 형을 불러 넘었습니다.
온몸이 꽁꽁 얼고서야 마당에 들어서며 엄마를 불렀습니다.
"엄마아~~~!"
왈칵 눈물이 쏟아집니다.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방문을 열라치면 엄마의 손이 나를 맞았습니다.
"이런, 얼굴이 다 얼었네"
이내 손을 잡아끌어 아랫목에 깔린 이불속으로 데려갔습니다. 얼굴에 언 눈물을 닦아줬습니다. 밭일로 갈라 터진 어미의 손이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습니다.
눈보라 몰아치던 그 길에서 꽁꽁 얼었던 기억이 따뜻합니다. 이렇게 폭설이 내리면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와 어린 꼬마와 중년의 어미가 손을 맞잡아 온기를 더합니다. 잊히지 않는 기억은 세포마다 녹아 스몄습니다. 추우면 추울수록 되살아나는 디엔에이가 되었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아비에게 매달리는 아이가 있고, 눈물범벅으로 엄마를 부르는 꼬맹이가 있습니다. 구들장 데워진 아랫목이 있고, 식어 헐떡이는 붕어 몇 마리 빵으로 살았습니다. 따뜻하게 추운 겨울이 고드름처럼 자라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