떫어 오히려 좋아

꼭 달달해야 할 이유는 없는 거야

by 이봄


마냥 좋은 것은 주어지지 않았다.

좋은 것의 끝에는 그만한 무게의 나쁨이 있고,

행복이 넘쳐 기쁜 날에도

행여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이 따를까 싶어

지레 걱정이 앞서는 게 현실이다.

연일 미세먼지로 세상은 제 낯빛을 잃었다.

선택의 이유는 아니었지만

따뜻한 겨울과 매캐한 미세먼지는

하나로 묶인 맞바꿈의 결과이기도 했다.

포근한 날씨는 서풍을 부르고

서풍의 끝에는 반갑지 않은 미세먼지가

도반처럼 매달려 있었다.

북극의 모진 바람은 옷섶을 여미게 하고,

때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 매몰차게 몰아붙여

극한의 죽음을 떠오리게도 했지만,

북풍한설의 끝에는 언제나 맑고 청아한

하늘이 있었고 명징한 낯빛이 있었다.

좋은 일 끝에 다시 더 좋아 어쩌지

못하는 일은 없다.

떼쓰는 아이의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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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 떮은 맛이 좋았다.

지나치게 달달하면 식욕을 끊는다.

쓰고 떫은 게 오히려 잃었던 식욕을 부르고,

쉽게 질리지 않게 한다.

오래하고 싶은 무엇이 있다면 쓰거나 떫은

그래서 때로 긴장하고 투닥거리는 게 좋다.

적당한 긴장감은 인연의 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담금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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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큰둥 떨떠름한 시간을 보냈는데

마시다 남은 와인 한 잔이 잠을 불렀다.

초점을 잃어 희뿌연 세상은

대충대충 오거나 말거나 하는 마중이었다.

절실함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시큰둥 떨떠름하다.

'페이드아웃'쯤 될까?

점점 짙어져 마침내 어둠으로 사라지는 것.

안개와 먼지가 의기투합해 만든

세상이 그랬다.

내일을 걱정하며 종종대는 게

삶이라지만 막상 장담하지 못하는 게

내일이란 시간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는 이 있다하면

예언자의 반열에 오른 현자다.

치열하게 살았다 하고, 뜨겁게 사랑했다 해도

결국은 잊혀지고 지워지는 페이드아웃이다.

흔적은 지워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이미 지워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지워야만 채워지는 거.

떫어 텁텁한 뒷맛, 삶은 모름지기 떫고 쓰다.

그렇지만 그래서 입맛을 다시게도 된다.

"웃기는 얘기지만 떫어서 오히려 좋구나.

남은 와인 한잔에 잊혀지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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