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도 없는 길 걸어 오시었다 했습니다
달빛조차 없는 길을 걸었습니다.
길은 어둡고 인적은 끊겨 적막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도 없는 길에서
방향을 잃어 헤매던 시간입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길, 절망만 유령처럼
떠돌던 날들입니다.
시선은 공허했고 걸음은 힘을 잃었습니다.
낭떠러지가 코 앞인지 알 수도 없었죠.
어쩌면 알아야할 이유마저도 없었습니다.
가야한다 말들 하기에 그런 줄 알았습니다.
목적 없는 길은 어둡고 몸짓은 무거웠지요.
풍전등화 위태로움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시큰둥 심드렁한 몸짓에 시간만 죽었습니다.
죽어야할 것 살아 못마땅한데
오히려 살아 빛나야 할 것만 속절 없습니다.
의미없는 길은 길게 이어졌지요.
그런 날에 그대를 보았습니다.
바람 앞에 등불이라지만 촛불같은 그대
꽃불로 어둠을 밝히고 꿈인 듯 잠결인 듯
아련히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몽롱합니다. 꿈꾸듯 길을 봅니다.
더듬 더듬 더듬어 걷던 길이 거기에 있습니다.
오금이 풀려 주저앉았던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칠흑의 어둠 깊던 날에 촛불은 달빛이었습니다. 길을 밝히고 내일을 꿈꾸기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잊었던 꿈과 잃어버린 의욕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잔설 비집고 뾰죽이 돋아나는 봄날의 새싹입니다.
여전합니다. 길은 어둡고 바람은 사납습니다.
허연 이빨 들어내고 짐승처럼 달려듭니다.
그렇지만 더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대 어둠 밝혀 오시었습니다.
달빛이고 횃불입니다.
헤매던 길은 또렷하고 바라봄은 명징합니다.
그대 오시었다더니 그러합니다.
촛불 들고 횃불 들어 밤을 밝혔습니다.
그믐의 어둠이야 여전하고, 바람은 사납다지만 길은
거기에 있고 꿈은 달처럼 빛나는 날들입니다.
그대 오시어 돋아난 봄날의 들풀입니다.
그대는 어둠 밝히는 촛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