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야
깨똑 깨똑 휴대폰이 울었다. P에게서 온 문자였다. 오래된 사진 한 장과 장난기 어린 문자다.
"누구일까요?"
사진은 오래돼서 빛이 바랬다. 누렇게 빛바랜 사진이었는데 그 속엔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어린 계집애가 있었다. 눈은 까맣고 동그래서 제법 귀엽다는 것과 어설프게 잘린 단발머리는 솜씨로 보아 분명 계집애의 엄마가 잘랐겠구나 하는 짐작을 했다.
"모르겠니? 이거 실망인 걸ㅎㅎ"
"누군 누구야? 당연 너지"
대답을 하고 다시 사진을 들여다봤을 때 L은 알 수 있었다. 동그랗고 까만 눈이 P와 무척이나 닮았다는 걸. 자라면서 몇 번이나 얼굴이 변한다고 했는데 어린 계집애의 눈이나 지금 P의 눈은 세월을 뛰어넘어 판박이로 남아있었다.
"있잖아, 지금이나 그때나 눈이 똑같아서 금방 알아봤어"
"그랬니? 난 잘 모르겠는데. 정말 닮았어?"
"응, 정말 닮았어. 눈이 제일 예쁘잖아. 넌"
L과 P는 추억에 빠져 한참을 떠들었다. 호호 깔깔 웃음은 끊이지 않았고, 시간은 거꾸로 흘러 시골 어느 사진관으로 그들을 소환했다.
L과 P는 사랑하는 사이다. 남자는 시골에 살고 여자는 도시에 산다. 남자는 밤을 좋아하고 여자는 낮을 좋아한다. 남자는 산을 좋아해서 등산을 즐기고 여자는 물을 좋아해서 물가를 산책하는 걸 즐긴다고 했다.
어떻게 만났을까 궁금했을 때 L이 사진 한 장을 꺼냈다. P의 사진이다. 커피숍에서 찍은 사진이다. 탁자 위에는 커피가 놓여 있고 긴 머리 쓸어 올린 P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사진 한 장으로 둘은 만났다고 했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L은 그때부터 P의 마음을 얻기 위해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다고 했다. L의 구애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고, 계절을 넘어 오랫동안 이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L이 첫눈에 마음 빼앗겼듯 P도 그랬다고 했다. L이 올려주는 글을 읽으면서 P도 L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가졌다고 했다.
둘 사이에는 사는 곳부터 좋아하는 것까지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오늘처럼 사진 한 장이 만든 인연이 있었다고 했다.
한참을 이어진 둘의 수다가 끝나고 난 뒤에도 L은 빛바랜 사진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P의 오래된 시간이 거기에 있었다. 더는 함께할 수 없는 시간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헤어짐도 끼어들었을 터였다. 살았으니 만나게 되는 것들과 이별을 하게 되고 비껴갈 방법도 없다. 추억으로 남은 사진 바라보면서 그리움에 젖어들 뿐이다. 사진 한 장으로 만날 수 있는 추억은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가슴에 차오르는 기억은 향기롭고, 마음에 쌓이는 기억은 행복으로 물들었다.
L은 새벽 첫차를 타고 P가 사는 도시로 간다. 만나서 차도 마시고 술잔도 기울인다. 그러다가 가슴 뻐근하게 끌어안아 입맞춤도 한다. 빛바랜 사진처럼 추억할 오늘을 만드는 일이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꺼내 추억할 사진 한 장 찍어야지 하고 L은 생각했다. 손에는 여전히 사진 한 장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