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하게 향기 피워내며
여물지 못한 봄바람이 때때로 불었다. 골짜기 마다 패잔병으로 남은 겨울이 두텁게 진을 치고 있었다.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사이로 허연 이빨 들어내고서 최후의 일전을 벼르듯 제법 대열을 유지한 채 겨울이 머물렀다.
섣부른 선택은 허무하게 무너질 봄날의 꿈이었다. 높다란 봉우리엔 단단히 쌓아올린 겨울이 기세 등등 으름장을 쏟아내고, 들을 지나고 강을 건넌 바람이야 고작 남녘의 어디까지 봄이 왔다거나, 머지 않아 추풍령을 넘어 파죽지세로 봄이 몰려올 거라거나 하는 따위의 풍문을 퍼나르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매화가 피고 유채꽃이 바다로 일렁인다고도 했다. 소문은 소문을 부르고, 말은 말을 낳았다. 빨래터 아낙들은 쥐어짠 빨래보다도 많은 말들을 이고 날랐다. 바지랑대 높다란 곳엔 소문이 펄럭였고, 젖먹이 아이들은 젖보다도 먼저 소문을 빨았다.
꽃은 피었다. 꽃으로 피기도 전에 들불로 먼저 매케하게 타닥였다. 마을로 이어진 길을 따라 봉화처럼 말들이 피어났고, 골짜기마다 연기 가 가득했다. 날짐승은 하늘을 배회하고, 들짐승은 밤마다 능선을 넘었다.
봄이 온다는 건 그런 거였다. 잠들었던 모든 것들 순간으로 깨어나 아우성치는 시간이 봄이었다.
멈췄던 숨골이 트이고, 잠자던 본능은 어린애처럼 깨어 울었다. 발정난 고양이가 밤이 깊도록 울었고, 고라니는 덩달아 꽤액 꽥 산에서 울었다. 소란스런 밤이 지나고 햇살 퍼지면 비둘기는 비둘기 대로 암컷을 희롱했다.
마당 가득 백합이 피던 날에 낫으로 꽃을 베었다. 나뒹굴던 신문지 펼쳐놓고 백합 몇 송이 둘둘 말아쥐고서 자전거를 타고 신작로를 달렸다. 마주오는 자동차는 불이라도 난 것처럼 흙먼지 뽀얗게 일으키며 달려오고, 계집아이 눈에 삼삼했던 까까머리 사내녀석은 뽀얀 얼굴 떠올리며 헤벌쭉 달려갔다. 지천으로 꽃은 폈고, 말들은 여전히 풍문으로 시끄럽던 날에 수컷은 암컷을 찾고, 고양이는 애 울듯 울었다.
백합꽃 받아들고 말도 없이 달아난 계집애는 여전히 예쁘겠지? 주절거리게 되고, 그때나 지금이나 봄날은 시끄럽다. 까까머리 사내녀석은 피지도 않은 백합 몇 송이 낫으로 베어다가 신문지에 둘둘 말아들고서 자전거 패달을 밟으려 한다. 다만, 오늘 너는 말도 없이 돌아서지 마라. 주문처럼 웅얼거리며 그 때 그 길을 달린다.
봄은 잠들었던 것들 봇물처럼 깨어나 아우성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