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고 싶었어
'는쟁이냉이'란다. 사전에 실린 이름을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밥상에 올라 식구들의 입맛을 돋구었을 녀석이었다. 어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 때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이른 봄이면 잔설이 남은 골짜기를 뒤져 산갓을 뜯고, 데쳐서 물김치를 담갔는 지는 모른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온 집안의 특별한 김치였다. 사십여 호가 드문드문 떨어져 마을을 이룬 산촌이었지만 우리집 말고는 누구도 뜯어다가 김치를 만들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특별한 산나물이었다. 갓처럼 톡 쏘는 매콤함이 일품인 나물이었는데 제대로 데쳐 담근 물김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맵고 알싸했다. 고추냉이를 듬뿍 풀어 만든 물김치쯤 된다고 해야할까?
산갓이라고 불렀다. 산갓은 높고 깊은 골짜기에서 자랐다. 축축히 젖은 모래흙을 좋아하고, 찬바람 불어가는 냉골을 좋아했다. 그러니까 덥고 마른땅에서는 볼 수가 없는 나물이었다. 도랑물처럼 차가운 물이 흘러야 하고, 그 골짜기는 어느 정도의 일정한 고도가 필요했다. 사는 곳이 까다로와서 그만큼 산갓은 귀하신 몸이었다. 입소문으로 맛을 본 사람들이 늘었으니 점점 더 귀한 산나물이 되는 중이다.
며칠 전 저녁을 먹다가 산갓 얘기가 나왔다. 이맘때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찾게 되는 음식이어서 밥상머리에서 산갓을 얘기하는 것은 당연한 거였다.
"형, 산갓 뜯을 때 안됐을까?"
"글쎄다. 아직 이른 것 같기도 한데 양지쪽은 또 모르겠네..."
"하긴, 좀 이르긴 하겠다"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잊고 있었다. 좀 더 지나서 한 번 가봐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던 차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 나야. 둘째 형. 오늘 수진이 아범 뭐해?"
"뭘 뭐해요. 그냥 집에 있어요"
"그래? 그럼 우리 산갓 뜯으러 산이나 갈래?"
시내에 사는 형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통화를 끝냈을 때 잘됐다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맘때면 그리운 맛이라서 그랬다. 형제들 모두 몸으로 기억하는 특별한 봄맛이다. 못해도 두어 번 맛을 봐야만 제대로 된 봄맞이를 했구나 하는 봄놀이였다.
그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모르는 사람에겐 지천에 널린 잡초에 불과했지만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에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서 그랬다. 귀하고, 예쁘고, 소중한 그래서 특별하다 싶은 것들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 마음이었다. 의미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등산화를 신고 베낭을 맸다. 전지가위도 하나 챙겨 주머니에 넣고 산을 오랐을 때 보이는 건 온통 눈이다. 골짜기 초입 비탈에 눈이 가득했다. 마을엔 마당마다 두렁마다 봄볕이 가득했는데 골짜기엔 눈이 그대로 였다.
"형? 어째 좀 이르다 싶었는데 오늘은 아닌가 봐요"
"그러게. 물김치 좀 먹겠다고 했더니 오늘은 안되겠다 야..."
그래도 그냥 내려올 수가 없어서 조금 더 골짜기를 오르니 실개울 가득 얼음이 가득했다. 음지쪽 비탈마다 눈은 하얗게 쌓였고, 물길은 아직 얼음으로 두껍께 덮여 겨울로 잠들어 있었다. 겨울이다.
때가 아니었다. 입맛만 다시다 만 날이다. 아직 아니라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눈 녹은 구석에서 빼꼼이 얼굴 내민 산갓 하나 뜯었다. 산에 간다고 이미 소문을 냈던 터라서 체면치레 면피용 산갓을 만났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 오늘은 예쁜 사진 한 장 남기는 거로 만족해야지..."
짧은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그녀에게 전해줄 사진 한 장 손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