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저고리 안주 삼는 비가 내렸습니다.
어쩐지 외로워서 술을 마셨습니다. 밤은 깊고 세상은 고요합니다. 때도 없이 짖어대던 강아지는 오늘따라 조용합니다. 묵언수행, 엉겹결에 벽만 바라보는 밤입니다.
안주를 챙기고 권커니 잦거니 잔 채울 이 없어 그냥저냥 취하면 그만입니다. 바나나 하나 안주로 내어두고, 거울 마주하고 고스톱 치듯 잔을 들었습니다.
오늘 넌 어땠니?
물어봐야 돌아올 대답은 뻔한 거라서 의미도 없습니다. 오늘은 그저 침묵입니다. 마주앉은 녀석이 멋대가리가 없습니다.
노란 바나나 옷섶 풀어헤치듯 껍질 벗기다가 얼굴 붉혔습니다. 노랑 저고리 숨이 멎듯 옷고름 풀던 날, 꽃은 향기롭고 나비는 어여뻤다지요. 화양연화 꿈같은 봄날입니다. 시간과 기억이 한데 뒤섞여 몽롱합니다. 잠 자듯, 꿈을 꾸듯 봄날은 그런 거야 떼도 쓰는 밤입니다.
하얀 속살 마주하고 끝내 베어문 한 입, 향기롭고 달콤합니다. 아득한 그대 살냄새인 양 바나나가 희롱합니다.
시인은 말했습니다. 저기쯤 오시는 봄은 새 풀 옷 입고, 하얀 구름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골골마다 안개처럼, 구름처럼 봄은 그렇게 오시는 게 맞습니다. 안달복달 달뜬 봄이야 내 맘에 일렁이는 봄입니다. 오시는 봄은 분명 외씨버선 곱게 조붓한 몸짓으로 오시는데, 봄마중에 들뜬 나는 겅중겅중 강아지로 요란합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밤은 고요하고 마을은 죽은듯 침묵입니다. '요란 떨지 마라!' 눈이라도 흘기듯 고요한 시간입니다.
잠들었다 화들짝 깨었습니다. 바람 한 점 새어들까 꽁꽁 싸맸던 창문을 닫지도 않고 잠들었는데 비가 내렸습니다. 침대 맡 열린 창으로 시끄럽게 비가 내렸습니다. 요란합니다.
꽃다발 가슴에 안고 오시는 그대 일까요?
훅하고 파고드는 냄새가 좋았습니다. 폐부 가득 흙냄새 끼쳐오고, 귓전 가득 요란한 소리가 반갑습니다. 새벽의 고요를 쓸어내는 소란입니다. 술을 부르던 봄밤은 후둑후둑 봄비로 달아나고, 나는 창문도 닫지 못하고 잠들었습니다.
저기 어디쯤 그대는 왔을 터 입니다. 까치발로 모가지 길게 빼고 그대 기다리다 나는 술 한 잔으로 취했습니다. 나는 겅중겅중 강아지로 요란을 떨고, 그대는 외씨버선 곱게 자분자분 오시겠죠.
어느 좁다란 골목에서 그대 만나질까요?
터질 것 같은 시간이 봄비로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