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속 두 연인

비바람 부는 날 부둥켜 않아도 좋아

by 이봄

종일 비가 내렸다. 새벽을 깨워 시끄럽던 비가 아침과 오후를 지나 다시 어둠에 젖어 요란을 떤다. 낮인지 밤인지도 모호하게 어둑하던 시간은 이내 밤으로 이어지고, 숨죽였던 감정들 순서도 없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내리는 비 바라보면서 향기 좋은 커피 한 잔으로 미소 짓다가도 순간, 울컥 치미는 외로움에 덩달아 울음을 울었다. 꺼억꺼억 노란 위액이 올라올 때까지 울음으로 내리는 비. 굳이 끌어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살아나고, 다독여 억누르던 감정도 손을 떠나 더는 통제되지 않는 혼란이 거기에 있었다.


뉴스를 보다보면 풍랑에 휩쌓여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의 말미에는 꼭 너울성 파도로 인해 침몰했으리라 추정된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약방의 감초였다. 긴 겨울이 지나고서 만나는 봄비는 너울성 파도였다. 그것도 까만 어둠을 뚫고 소리로만 내리는 봄비는 더욱 그랬다. 짐작만으로 더듬게 되는 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상상을 더해 괴물처럼 자랐다. 고양이 한마리 야옹야옹 울어도 상상의 끝에서 만나는 고양이는 결국 숲을 호령하는 호랑이로 변하기 일쑤였다.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면 배들은 포구를 찾아 몰려들고, 방파제는 온몸으로 성난 파도를 막아섰다. 미처 포구에 정박하지 못한 배들은 섬의 뒷편에 기대 파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때때로 잔잔한 수면에 파도가 일고, 미처 피안하지 못한 배는 성난 파도에 침몰했다. 집채만한 테트라포트 겹겹이 방파제를 쌓듯 마음에도 단단한 울타리 하나 만들어야만 했다. 앙금으로 남은 감정의 찌꺼기가 있지도 않았는데 여물지 못한 남자는 내리는 빗방울에도 무너져 때로 울었다.


향기 좋은 커피를 마시다가 이내 술잔을 기울였다. 단잠을 자다가 만나는 악몽처럼 느닷없이 파도로 일렁이는 게 마음이기도 했다. 사는 모습이 처량했고, 더는 꿀 꿈이 없구나, 절망하게 되는 파도였다.

그렇지만 청승맞은 봄비 밤을 새워 내린다 해도 결국은 지나가는 비에 불과했다. 마음의 문제였다.

비바람 부는 날 한번쯤 허리를 부둥켜 안아 걸을 수 있다면 내리는 비는 오히려 고맙고 사랑스러울 터였다. 우산 하나에 의지해 걷는 걸음은 발자국마다 꽃을 피우고, 걸음마다 이야기를 쏟아낼 터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산 속 연인을 꿈꾸는 비가 내린다. 더는 청승떨지 않아도 좋을 우산 하나 마련해야 겠다.

"잘 자요. 그대!"

"응, 당신도 잘 자. 내일 또 봐요?"

수다 끝에 나누는 인삿말에 하늘은 이미 개었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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