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몇몇 꽃다발로 묶었다

여전히 꽃은 향기롭다

by 이봄

어제는 겨우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했던 마당에 봄비가 내렸다. 어제만이 아니다. 비가 잦은 봄이다. 며칠 사이를 넘나들며 미세먼지가 밀려오고, 반짝 황홀한 봄볕이 내리쬐더니 이내, 구름이 잦아지더니 비가 내렸다. 봄이란 원래 일기가 불순했다. 너 나없이 조바심에 달아오른 계절이어서 그러려니 하는 게 상책인 계절이다. 오랫동안 겨울의 폭정에 시달렸을 것들이니까 새치기쯤은 애교로 봐줄만 했다. 그런 거였다. 오죽했으면 그러겠니?, 하는 마음이 봄에는 있었다.


잇몸 들떠 부실해지는 이처럼 겨울을 견딘 흙마당도 그랬다. 철쭉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서 꽃망울 키우려 애를 쓰고, 진달래 여린 가지도 그랬다. 멀뚱이 키만 큰 산벚나무는 늘어진 가지 꼬집어가며 오랜 잠을 깨웠다. 모두가 분주하고, 모두가 바빴다. 두런두런 나누는 수다는 얼빠진 놈의 치기이거나, 좌지우지 시간을 떡주무르는 마법사쯤 된다쳐야 누릴 사치였다.

마당을 천천히 걸었다. 들뜬 흙이 까치발로 일어서서 사나웠다. 겨울 웃자란 보리는 밟아줘야만 튼실하게 이삭을 키우는 것처럼 봄날의 마당은 밟아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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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진 곳 없이 터 다지듯 마당을 밟다가 말라버린 꽃대를 봤다. 허옇게 빛바랜 부추 꽃대는 우산을 펼치듯 꽃살로 남았고, 강원도 깊은 골짜기 오붓한 길에서나 어화둥둥 만나질 곤드레는 취기 얼큰하게 마른 꽃으로 휘청였다.

온통 움트는 초록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간간히 들려오는 꽃소식에 발걸음은 섬마을에 있다는데 말라버린 추억이야 뉘라서 돌아볼까. 바람 불 때마다 바삭이며 울 뿐이었다.


나를 보는 거 같았다. 이파리 가득 햇살로 빛났던 초록은 달아난 청춘이었고, 벌 나비 안달하던 향기는 담배 한 개비 연기로 스러졌다. 잊혀진 시간이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추억이었다.

뚝뚝 손톱으로 끊었다. 부추 꽃대 몇 개와 곤드레 만드레 취해 좋은 놈 하나도 잘랐다. 잊혀지지 않을 사진으로 추억하고 싶었다. 향기도 없고, 찬란한 빛깔도 없는 꽃이었지만 너는 여전히 꽃으로 예쁘구나 말해주고 싶었다.

새콩 줄기 끊어다가 한데 묶어 꽃다발이다 이름했다. 요리 조리 뒤적이며 사진을 찍었다. 곱디 고운 꽃다발로 향기롭기를 바랐다. 다독이는 손길에도 바스락 무너져 내렸지만 최후의 순간에도 꽃은 꽃으로 남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고개 빳빳이 들고 꿈을 꿀 것만 같았다. 겨울을 이겨냈다는 것 만으로 너도 나도 꽃이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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