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마다 새싹이 돋았다
오가는 이 없는 시골에 앉았으니 하게 되는 말이 정해져 있습니다. 삶은 단순하고 굳이 덧대어 뭔가 있는 듯 포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는 단순함이 일과의 전부입니다.
아, 이런 첫 문장부터 거짓말을 했습니다. 고백컨데 제일 좋아라하는 생활은 밤에 깨어있고, 낮에 자는 올빼미같은 일상입니다. 하릴 없는 겨울을 핑계삼아 늘어지게 낮밤이 바뀐 시간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렇다고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는 식의 거창함도 없습니다. 다만, 밤이란 시간은 깨어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이어서, 그래서 꿈꾸게 되는 공상이라도 방해받지 않아 좋다해야 할까요? 그런 시간이 좋았습니다.
오늘은 조팝나무 파릇한 가지를 보았습니다. 나름 둥그렇게 꽃무더기로 피는 모양이 좋아서 다듬는 녀석입니다. 욕심이지만 가지를 자르고, 끈으로 묶어 한껏 멋을 부리고 싶은 녀석입니다. 그저 알아서 자라게 두어야 좋겠지만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그런 조팝나무 웃자란 가지를 다듬었습니다. 다듬어 잘린 가지를 모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채 피기도 전에 잘라버린 미안함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궁상을 떨자면 내 모습이 거기에 있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다듬어 잘려진 나뭇가지가 나와 닮았습니다. 머물던 자리에서 밀려나 떠도는 모습입니다
어쩐지 처량맞은 삶입니다. 시 하나를 읽었습니다.
어떻게 사는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지? 궁금한 마음은 굴뚝 같은데 차마 물을 수 없는 자신이 처량해서 마음만 애달픈 시였다 할까요. 잘린 조팝나무 가지와 짧은 싯구가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아직 불기가 남아 있는지
그대의 아궁이와 굴뚝에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지.
잡탕 찌개백반이며 꿀꿀이죽인
나의 사랑 한 사발을 들고서
그대 아직 연명하고 계신지
그대 문간을 조심히 두드려봅니다."
시인은 그래도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궁금함 이기지 못해 그대 문간이라도 두드렸다고 합니다. 빼꼼이 대문 열렸다 한들 차마 들여다보며 그댈 부를 수가 없습니다. 담장 너머 까치발로 좀도둑처럼 염탐하는 게 고작일 나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부들은 조팝나무를 보며 농삿일을 시작하고 마무리 했다고 합니다. 조팝나무 가지에 새싹이 돋으면 못자리를 만들었다 하고, 꽃이 흐드러질 때쯤 모를 심었습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면 누렇게 단풍드는 조팝나무를 보며 벼를 벨 정도였으니 온통 벼농사는 조팝나무에 맞춰졌다 하겠지요.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이면 달이 뜬다지만, 나의 하루도 조팝나무에 맞춰진 농부처럼, 그대에게 맞춰진 하루로 해가 뜨고, 달이 떴습니다.
당신 사랑한다 고백을 하고, 오늘은 어땠다 주절거리게 됩니다. 그대 문간을 두드리게 됩니다. 한껏 용기를 내서 그대 문간을 두드렸다가도 막상 그대 나온다하면 달아날 것만 같습니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사립문을 벗어나기도 전에 달음박질 칠지도 모릅니다. 어째 오늘은 처량을 떠는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