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춤이 좋았습니다
뒷동산을 잠시 올랐다 내려왔는데 마른 풀잎 하나가 따라왔습니다. 풀잎이 붙은 것도 몰랐습니다.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다가 그제서야 뒷춤에 들러붙은 풀잎을 보았습니다.
어쩐지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했습니다. 비웃지 마세요. 팽팽한 균형을 무너뜨리는 힘은 결코 거대한 힘이 필요한 게 아니 거든요. 날아든 꽃잎 하나에 균형은 무너지고, 기울어지게 마련입니다. 물래 들러붙은 풀잎 하나는 때로 천 근의 무게 일 수도 있습니다.
녀석이 베베 꼬인 몸뚱이로 물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보여?"
그러게, 탁자위에 올려놓은 마른 풀잎이 말을 걸어오는 거 같았습니다. 지난 여름 주워온 조약돌 하나 꺼내다가 물음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질문이라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살고자하는 의욕인데 어쩐지 풀잎도, 조약돌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저 죽어 입 다문 침묵입니다. 시어 얼굴 찡그려지는 오렌지 한 입 베어물면 폭포처럼 쏟아지는 침이 어울린다 싶었고, 느닷없이 뺨을 얻어맞고서 휘둥그레 놀란 사내녀석의 눈이 제격이다 싶었습니다.
궁금하다는 건 그런 게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고, 강을 건너 낯선 골짜기 덩그랗게 팽겨쳐진 애잖함도, 짐짓 모른척 눈을 외면했습니다. 조약돌을 지우고 사과 하나 빨갛게 그렸습니다. 심장이 뜁니다.
때때로 새벽이면 배가 고파서 잠이 깼습니다. 훅하고 바람 불면 건불처럼 날아갈 몸뚱이라서 식탐도 없는데, 새벽 허기진 배는 곤한 잠을 깨우곤 했습니다.
한때는 때 되면 먹어야 한다는 게 고문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거 있죠? 알약 한 알 비타민 먹듯 삼키면 몇 날이고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심드렁 의욕이 없으면 밥맛도 없습니다. 사는 게 재미가 없는데 무슨 밥맛에 입맛을 찾을까요. 그러다가 느닷없이 허기지고 배가 고팠습니다. 느닷없단 말은 사실 거짓말 입니다.
당신이 좋았습니다. 때 되면 먹기 싫어도 배고프고, 빈 위장 채워주지 않으면 종일 앙탈을 부렸지만 어느 날, 허기가 몰려왔습니다. 밥상이 채 차려지기도 전에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먹고 싶었습니다. 배는 고프고 끝도 없는 궁금함이 꽃처럼 피었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지만, 먹고 싶다는 건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습니다. 먹고 싶었습니다.
조약돌 지우고서 빨간 사과 그려넣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과 크게 한 입 베어물듯 침이 고이고, 입술 부르트게 입맞춤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미의 품에 안겨 젖가슴 찾듯, 당신 품에 안겨 허기진 배 달래고 싶었습니다. 사과 예쁜 골에 얼굴 빨개지듯 나는 붉은 꽃불이었으면 좋겠다 했습니다. 뽀얀 엉덩이에 얼굴을 묻고 싶었습니다.
초록의 대지에 안겨 잠이 들듯, 그대 품에 안겨 배냇짓으로 잠들면 좋겠습니다. 좋아서 웃고, 찡그려 짜증부려도 다만 그대 품이면 행복한 나입니다. 숱안 궁금과 물음의 끝에는 항상 그대가 있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보여?"
마른 풀잎 물었을 때 나는 알았습니다. 한 입 크게 베어물 사랑이 그대였습니다. 입맞추고 싶었습니다.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잠들고 싶었습니다. 당신 사랑합니다,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당신 사랑합니다.